◇고백하는 사람들/김재웅 지음/472쪽·2만5000원·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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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농 출신으로 1949년 평양교원대학에 재학 중인 29세 김삼돌에 대한 학과장의 평정서(評定書) 일부다. 광복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북한은 대중에게 개인 기록물을 작성하도록 했다. 평정서는 개인이 직접 작성한 이력서, 자서전과 한 세트를 이뤘다. 주로 상급자가 작성하는 평정서는 이력서와 자서전의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개인의 품성에 대한 평가와 향후 사회주의 역군으로서의 가능성까지 담았다.
이 책은 1945∼1950년 총 879명이 작성한 이력서와 자서전, 평정서를 기초자료로 삼았다. 대학교수와 중학 교사, 대학생, 통신사 직원 등 지식층에 속하는 이들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평양공업대학 교수 이력서는 인적 사항뿐 아니라 부모의 직업과 재산, 토지개혁 때 몰수되거나 분배받은 토지 평수, 출신성분과 사회성분, 외국여행 경력, 8세 이후 경력 등 무려 42개 항목을 기록하도록 돼있다. 이력서가 단답식인 반면 자서전은 그들의 활동 경력과 가족 배경 등을 미시적 수준까지 해부할 수 있는 ‘인생 고백’이었다. 6·25전쟁 중 미군이 노획해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소장돼 있던 이 자료들은 10여 년 전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책은 1부 전략적 글쓰기를 시작으로 해방의 소용돌이, 일제 잔재 청산, 토지개혁, 국가건설, 교육, 계급 등 11부로 구성됐다. 모자이크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개인의 기록에 생기를 불어넣고 하나의 주제로 관통시켰다. 20여 년간 북한사를 연구해온 저자의 내공과 노고가 돋보인다.
토지개혁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 됐다고 기록한 조선인민군 군관 김명호(왼쪽)와 드물게 스케치를 곁들인 김종성의 자서전. 푸른역사 제공
오늘의 눈으로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극심했던 광복 직후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고백의 조각들은 북한이 건설하려던 사회의 모습을 증언한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념, 그리고 그 이념은 출신성분에 의해서 나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