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이원하 지음/220쪽·1만4000원·달
산문집은 시인이 좋아하는 한 대상(남성)과의 다양한 일화들과 그것이 한편의 시로 빚어지기까지 감정의 파장을 섬세히 그려낸다. 절절한 연심(戀心)이 산문으로 풀어진 경우는 많았지만, 발화자인 여성이 이토록 앙큼하게 들이대면서도 이렇다 할 결실(?)이 없어 상심하는 상황을 능청맞게 쓴 글은 거의 없었다. 이 산문집의 세계가 여러모로 흥미로운 이유다.
“당신에게 놀아나는 내 인생이 나는 좋아요. 당신으로 탕진하는 내 삶이 나는 좋아요”라고 태연하고 명랑하게 읊조리다가 “그가 질질 흘리니까 내가 그의 집 우렁각시가 된 거예요. 그가 터뜨린 자동차 바퀴를 몰래 해결하는 거예요. 그에게 따라붙은 스토커를 조용히 해결하는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평생 당신은 나에게 의존하면 돼요”라고 구슬린다. 곰 인형을 껴안고 잠을 청하다가 “곰 인형이 좀 이렇긴 해도, 나에게 모든 걸 맡긴 곰 인형과는 벌써 갈 데까지 갔어요. 그러니 당신도 내게 모든 걸 맡기세요”라고 도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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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