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줄어 국내 제작사 첫 셧다운… 코로나 지원 사각지대서 존폐 위기
3일 경남 사천시의 항공기 부품 제작업체 에스앤케이항공 창고에 항공기 날개 구조물 48개가 쌓여 있다. 이 날개 구조물은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됐지만 수입 중단 통보로 재고 물량으로 남았다. 이 회사는 이 여파로 15일부터 공장 폐쇄에 돌입했고 근로자 216명 전원이 휴업에 들어갔다. 사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
3일 경남 사천시에 위치한 항공기 부품 제작업체 에스앤케이항공 생산 공장. 이 업체는 에어버스 A320 항공기에 장착되는 날개(상부 구조물)를 수출한다. 조정만 생산운영실장은 창고에 쌓여 있는 항공기 날개 48개를 가리키며 “수출이 막혀 재고가 쌓이는 바람에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 한두 달만 더 가면 폐업”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15일부터 공장 셧다운에 들어가 216명의 전 직원이 기약 없는 휴업에 들어갔다. 에스앤케이항공이 공장 문을 연 지 15년 만에 가동을 중단한 건 에어버스가 1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항공기 제작 수요 감소로 물량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군수 물량으로 가까스로 버텨왔지만 이젠 이마저도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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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클러스터 인력 절반이 쉬는데, 정부 지원 대상 아니라니…” ▼
코로나 지원 사각지대
항공기 제작 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지난달 중순 사천 항공 클러스터에 있는 항공기 제작업체 30여 곳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부에 항공 제조업 생존을 위한 특별고용업종 지정을 건의했다. 비대위를 이끄는 황태부 디엔엠항공 대표는 “보잉과 에어버스 물량은 끊겼고, 군수 물량도 많이 부족하다. 유동성 위기로 고용 유지도 쉽지 않다”며 “글로벌 항공사로부터 부품을 수주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인데 이미 따놓은 물량도 대지 못하고 있다. 기술력을 갈고닦아 키운 한국 업체들이 한 방에 무너지게 생겼다”고 말했다.
항공기 제작 산업은 국가의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는 철저하게 정부 지원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 특별고용업종으로 지정돼 고용유지 지원금과 각종 세제 혜택 등을 받으려면 최근 1년간 고용인원이 이전 1년보다 현저히 악화되거나 고용감소율이 전체 업종 평균보다 5%포인트 이상이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 제작업체 임원은 “주 52시간제 도입에 발맞춰 지난 1년간 고용을 대폭 늘렸다가 이게 오히려 정부 지원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어렵게 일궈낸 항공 부품산업이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는데도 충분히 망가지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며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라도 지원 범위를 좀 더 넓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동차 부품업체 코넥의 이광표 대표가 8일 충남 서산시 본사 공장에서 전기자동차 핵심 부품인 ‘기어 케이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코넥은 기어 케이스 전량을 미국 테슬라에 납품하는 2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지만 대출이 막혀 증설 투자를 못 하고 있다. 서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코넥은 필요한 설비자금 30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3월 주거래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3개월 가까이 대출 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자동차업계의 경영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금융권의 지원 여력이 당장 위급한 업체들의 생존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광표 코넥 대표는 “예전 같았으면 한 달 내에 심사가 됐을 테지만 지금은 마냥 기다리고 있다”며 “제때 투자를 못 해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납품 계약이 아예 깨질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코넥의 주거래은행 관계자는 “대출액이 커 다수의 금융회사가 차관단을 구성해 돈을 빌려주는 중장기 대출을 추진 중인데 코로나19로 다른 금융회사들이 대출 검토에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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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전기차 부품 시장은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가 기회를 놓치면 순식간에 해외 업체들이 치고 들어온다. 지금 자동차산업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사천=변종국 bjk@donga.com / 서산=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