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서 창녕에서… 또 비극 반복 분노에 찬 처벌 위주 대책으론 한계 전수조사 한다지만 일회성 그칠 우려 보호망 다시 짜고 상담전문성 높여야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정부는 각종 특별대책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아동학대는 악화돼왔다. 2018년 기준 전국의 아동학대 사례 수는 2만5000건에 달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도 끊이지 않아 지난 10년간 171명의 아동이 학대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매달 약 1.5명의 아동이 우리 사회에서 학대로 숨진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부랴부랴 전수조사를 포함한 특별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과연 이번에는 이런 대책들이 아동학대를 방지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이유는 이런 특별대책들은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보여주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전수조사를 실시하면 아동학대의 위험에 처한 모든 아동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일회성으로 오늘 실시한 전수조사는 내일, 그리고 모레 발생할 수 있는 아동학대는 발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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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사망에 이르기 전에 아동학대의 징후가 있었고 그것을 누군가가 감지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비극을 미리 방지하지 못한 것은 현재의 지역사회 보호망이 너무 느슨하기 때문이다. 느슨한 보호망은 사각지대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렇게 뻔히 알면서도 사각지대의 틈새에 빠져 외롭게 죽어간 아동들을 방치한 것이다. 실효성 있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아동의 안전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본적인 보호망이 보다 촘촘히 구축되고 작동해야 한다.
문제는 아동 보호를 위한 지역사회 보호망이 너무나 허술하다는 것이다. 2020년 아동학대 관련 중앙정부의 예산은 총 230억 원 남짓이다. 고용복지 총예산 180조 원의 0.01% 수준이다. 최근에 증가한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현금성 복지에 투자하는 금액은 수십조 원 단위지만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우리의 투자는 몇백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그 예산은 정부의 일반예산으로 편성되지 못해 범죄피해기금이나 복권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기금예산은 정부의 일반예산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진다. 아동학대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로 낮은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보호망의 최일선에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현실을 살펴보자. 현재 전국에는 총 68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920여 명의 아동학대상담원이 근무하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이 평균 3, 4개의 시군구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시적으로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관할 지역이 턱없이 넓다. 실제 아동학대 사례 수로 보더라도 상담원 1인당 사례 수는 64건에 달하고 있다. 미국의 아동복지연맹에서 권장하는 사례 수인 17건의 약 4배에 달하는 사례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 대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담원의 전문성이다. 그런데 상담원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보니 격무와 열악한 처우에 지친 상담원의 이직률은 30%에 달하고 있다. 매년 약 3분의 1의 상담원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성을 높일 수는 없다. 이런 총체적인 부실 앞에서 지역사회의 촘촘한 아동 보호망을 기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일회성이고 충동적인 아동학대 대책이 아니라 기초를 튼튼히 하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