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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승과 출가묘 “우린 서로 쿨한 사이”

입력 | 2020-06-15 03:00:00

‘고양이를 읽는 시간’ 책 펴낸
전남 순천 송광사 보경 스님




《10일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았다. 지난해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에 이어 최근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낸 보경 스님(56·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과 주인공 ‘냥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책 속 냥이가 좋아하는 공간인 탑전(塔典)은 송광사 초대 방장 구산 스님(1909∼1983)의 사리탑을 모신 곳. 구산선문(九山禪門)이란 현판이 붙은 입구는 중앙 기둥을 파서 낮고 좁은 문을 만들어 들어서려면 누구나 허리를 굽혀야 한다. 그래서 하심문(下心門)으로도 불린다.》

전남 순천시 송광사 탑전 입구인 구산선문(九山禪門) 앞의 보경 스님과 고양이 ‘냥이’. 자기 거처에 있던 냥이는 인터뷰가 끝나자 스님을 따라나섰다. 보경 스님은 “서울에서 12년간 주지 생활을 마치고 송광사로 왔을 때 ‘복덩이’ 냥이를 만났다”며 “냥이를 통해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순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구산선문의 유래는 무엇인가.

“이 문은 25년 전쯤 은사(현호 스님)가 주지로 계실 때 도량을 정비하면서 탑전으로 들어가는 일주문 격으로 세웠다. 참배객이 허리를 숙여 추모의 마음을 가져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구산(九山)이 방장 스님의 법호고, 선종의 상징이라는 중의적 뜻이 있다. 사람은 허리를 숙여야 하지만 냥이는 그냥 지나다닐 수 있다(웃음).”

―냥이는 어디에 있나.

“저는 무상각에서 책 보며 글 쓰고 냥이는 보일러실 쪽에 거처가 있다.”

그쪽을 내다보니 낯선 방문객에도 냥이의 표정은 무심(無心) 그 자체였다. 첫 책 ‘…내게로 왔다’는 스님과 냥이의 흔치 않은 만남과 사연을 다뤘고 이번 책은 속편 격인데, 예사롭지 않다. 노자와 장자, 불교의 선(禪)과 수행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회현상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내공이 엿보인다.

―스님과 고양이의 첫 만남은….

“2016년 겨울이었다. 원래 큰 절(송광사) 공양주 보살이 쥐를 쫓으려고 (고양이들을) 데려왔는데 세력 다툼 끝에 거기서 밀려난 거죠. 겨울을 날 요량으로 보일러실에 온 것 같아 사료와 박스를 갖다놨는데 냥이가 살게 됐다.”

권윤주 작가의 그림. 불광출판사 제공

―어떻게 책으로 쓸 생각을 하게 됐나.

“함께 있으니 육아일기 쓰듯 관찰하게 되더라. 다른 생각들도 쌓여 글이 모였다. 첫 책이 설렘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깊이 들어가려 했다. 어느 순간 절집에서 이야기가 사라졌더라. 절집에 흥미로운 사연이 많아야 출가자도 늘고 사람이 모이지 않겠는가.”

―‘고양이를 읽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철학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등가로 생각한다. 시선은 날카로운 검(劍) 같다. 관찰자로서 거리를 두고 보려고 노력했다. 냥이도 물론 의지가 있다. 요즘 언어로 서로 ‘쿨’한 관계다.”

―책에서 독서 1만 권의 꿈을 언급했는데….

“어림잡아 7000∼8000권 읽었다. 목표라기보다는 독서를 통해 성찰의 시간이자 기회를 얻겠다는 의미다.”

―선(禪)은 문자나 책보다는 ‘단박 초월’의 세계를 염원하지 않나.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하지만 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봐야 한다. 문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다가 깊은 것은 넓이에서 온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양이 쌓여야 질(質)로 들어갈 수 있다.”

―글 쓰는 스님으로는 법정 스님이 유명했다. 송광사 스님이기도 했다.

“법정 스님 강연이 출가의 계기가 됐다. 광주 시민회관에서 강연하셨는데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그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을 버리는 것이 원한을 갚는 길이요, 영원한 진리’라고 하시더라. 법구경 구절이었다. 1980년 이후 광주의 4, 5월은 매년 뜨거웠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동쪽을 보는데, 서쪽을 보는 것처럼 들렸다. 너무 강렬해 ‘불교는 뭐지?’ 하는 발심(發心)으로 이어졌다. 절집에 오니 다른 것은 나의 길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글쓰기와 관련해 법정 스님과 얘기를 나눈 적 있나.

“‘사는 즐거움’이란 에세이를 출간해 서울 길상사에 보냈다. 이후 법정 스님의 건강이 악화돼 문중 스님들과 병원을 찾았는데 말씀하시기 힘든 상태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하시는데 옆의 시봉 스님이 ‘글이 좋다’는 말씀이라고 전해줬다. 뜻밖의 말씀이이서 ‘내가 글을 써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냥이 이야기 3권도 나오나.

“세 번째는 주변 사람들 얘기로, 완결편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주인 되는 삶을 살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순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