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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의 마켓뷰]패자의 조건

입력 | 2020-06-09 03:00:00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

미국과 중국의 마찰 확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킨 중국을 향한 대응 조치를 고심하는 등 패권 충돌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식시장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에게 세계 패권 이동은 좋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미 주식시장 및 자산이 지난 100년간 최고의 투자처일 수 있었던 이유는 패권국으로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경제적 번영, 생산성 혁신 등 때문이다. 투자 구루(스승)들이 미국에 많은 이유도 당연히 자국 자산에 투자했던 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로벌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다면 앞으로 중국인 투자 구루들이 쓰게 될 서적을 읽게 될 듯하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패권’을 8가지로 정의한 바 있다. 교육, 기술 수준, 국가 경쟁력, 군사력, 무역 점유율, 산출량, 금융시장 지위, 준비자산 선호도(기축통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영국, 미국 등 과거 패권국이 가져왔던 특성이다.

흥미로운 점은 각 조건이 일정한 패턴으로 흥망성쇠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패권국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과 기술 수준 상승이 필요하다. 이후 국가 경쟁력 상승과 무역점유율 상승이 이어지며 전반적인 경제 수준이 커지고, 이후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워 패권국 지위를 얻는 식이다.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으로 이동한 과거 패턴을 보면 패권국들의 군사력이 가장 강했을 때 해당 금융시장의 지위도 높았다.

이러한 패턴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패권은 고점을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군사력, 준비자산 선호도 측면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지만 무역 점유율, 경쟁력, 교육, 산출량 등에서 과거와 같은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비를 늘리고 위안화의 국제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도 패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중 패권 다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중국은 미국이 보유한 권력 일부를 계속해서 공유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투자 포트폴리오에 중국 자산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한 국가가 패권을 잃어가더라도 해당 패권국 통화에 대한 준비자산 선호는 비교적 오래 유지된다. 이 통화를 지닌 국가들이 가파른 환율 하락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미국에 패자 지위를 넘겼음에도 파운드화 준비자산 선호가 1960년대까지 지속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달러화 지위가 패권 충돌과 상관없이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달러화 자산에 대한 장기 선호를 유지해도 되는 이유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