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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태울 때마다 100원씩 기부 ‘착한 택시’

입력 | 2020-06-05 03:00:00

인천서 택시 모는 박병준씨
반년치 모아 57만9600원 전달
“어려운 사람들에 용기 주고싶어”




3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택시 기사 박병준 씨(왼쪽)가 김연순 공동모금회 사무총장과 기념 촬영을 했다. 이날 박 씨는 6개월 동안 택시에 고객을 태울 때마다 100원씩 모은 돈 57만9600원을 기부했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57만9600원.’

누군가에겐 그리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인천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박병준 씨(53)에겐 의미가 남다른 돈이다. 박 씨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최근까지 승객을 태울 때마다 100원씩 모았다. 모두 5796번이다.

박 씨는 그렇게 모은 돈을 3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박 씨는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기본요금 3800원 중 100원씩 떼서 모은 것뿐이다. 내가 좀 덜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았다”며 쑥스러워했다. 박 씨가 기부한 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실직자 등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박 씨는 이번 기부가 “참 오랜만이라 후련하다”고도 했다. 박 씨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세미프로 골퍼로 활동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 은평구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회원 1명당 한 달 교습비 13만 원을 받을 때도 1만 원씩 모아 기부했다. 한 달에 250만 원가량 벌었던 그는 한 달 벌이가 훌쩍 넘는 돈을 기부해 ‘은평골프장 천사’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 씨가 없는 돈을 쪼개 기부한 건 주변의 도움을 받았던 감사한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1990년대 초반 프로 골퍼를 준비할 당시 한 달 수입이 30만 원밖에 안 될 정도로 곤궁했다. 프로 골퍼 테스트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골프장에서 일하던 그의 심성을 알아본 고객들이 적극 도와줬다. 박 씨는 “필드로 데려가 연습도 시켜주고 금전적 도움도 많이 주셨다. 언젠가 돈을 벌면 꼭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씨가 지금까지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금액은 모두 1600만 원. 하지만 박 씨는 2003년부터 기부를 할 형편이 못 됐다. 근무하던 골프장이 문을 닫으며 직장을 잃고, 부인의 건강마저 나빠졌기 때문이다. 세미프로 골퍼를 관둔 뒤 막노동을 하거나 물류센터에서 짐도 날라봤다. 오수, 축산 분뇨 처리 기술까지 배우며 생계를 꾸렸지만 수입은 일정하지 않았다. 박 씨는 “기부만은 꼭 이어가고 싶었는데 지킬 수 없었다. 17년간 계속 마음에 한으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날도 박 씨는 쉬지 않고 택시를 몰았다. 이날 역시 고객을 태울 때마다 100원씩 기부금을 모았다. 박 씨의 꿈은 한 번에 100원씩 모으는 돈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것. 박 씨는 “나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겠다”며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 기부하려면 손님을 더 태워야 한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