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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제 10년간 60% 오른 통신요금, 브레이크 다 풀렸다

입력 | 2020-05-31 08:02:00


서울 시내의 한 휴대폰 판매 업체. [뉴스1]

최근 휴대전화를 바꾸려고 대리점을 찾은 이모(29) 씨는 2년 전과 달라진 통신요금에 놀랐다. 5G(5세대)가 도입되면서 요금이 대폭 올라 있었다. 이씨는 “2년 전에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6만 원대)에 휴대전화 할부 가격(월 3만~4만 원)을 합쳐도 이동통신요금이 월 9만~10만 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만 월 9만 원대”라며 혀를 내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통신요금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책 방향이 통신요금 인하와 반대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월 20일 국회 본회를 통과한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때문이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1위 사업자(이동통신은 SK텔레콤, 유선전화는 KT)가 새로운 통신 상품을 출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즉 SK텔레콤이 새 이동통신 요금제를 출시하기 전 정부에 요금 약관을 제출하면 최대 2개월간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해왔다. 그런데 이 제도가 사라질 경우 통신업체는 자율적으로 통신요금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물가상승률보다 4배 더 오른 통신요금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이 날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법안이 담당 상임위를 통과했다. [뉴스1]

지난 10년간 통신요금은 가파르게 올랐다.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2010년 이동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살펴보면 모두 최저가가 월 3만4000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이하 무제한 요금제)는 월 5만4000원이었다. 하지만 2020년 5G 기준 통신요금은 최저가가 월 5만5000원으로 3사 모두 같았다. 무제한 요금제는 SK텔레콤과 KT가 각각 8만9000원, LG유플러스는 8만5000원이다. 최저가 요금제는 64%, 무제한 요금제는 61%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5.2% 상승했다. 일반 물가지수를 적용하면 이동통신 최저가 요금제는 월 3만9168원, 무제한 요금제는 월 6만3359원이 돼야 한다. 

이동통신업계도 할 말은 있다. 그동안 통신 품질이 좋아졌고 부가서비스도 많아졌다. 10년 전에는 요금제에 따라 음성통화 시간과 문자메시지 전송 건수가 제한돼 있었다. 주어진 통화 시간과 문자메시지 전송 건을 모두 사용하면 이후에는 과금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요금제는 통화나 문자메시지 전송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더 지불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3G에서 5G로 통신 품질이 크게 개선됐고, 성능과 부가 서비스도 더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단체들은 “이동통신 서비스가 데이터 중심으로 바뀌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입장이다. 카카오톡 등장 이후 문자메시지를 덜 쓰게 됐고, 데이터로 음성통화가 가능해지면서 통신사들이 통화와 문자메시지 과금체계에서 데이터 과금체계로 바꿨다는 것. 하지만 소비자가 저렴한 대체 서비스를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통신 품질 개선을 이유로 통신요금을 크게 인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인가제, 통신요금 인상 막아와

5G 상용화를 알리는 광고들. [뉴스1]

통신업체들의 일방적인 요금 인상을 제어해온 것이 통신요금 인가제였다. 지난해 3월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SK텔레콤이 인가를 신청한 5G 요금제를 반려했다. 가격대가 지나치게 고가 구간에 편중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SK텔레콤이 과기부에 제출한 5G 요금제 최저가는 월 7만5000원. 하지만 과기부가 이를 막아 현재 5만5000원의 최저가 요금제가 생겼다. 

그런데 이 제도가 5월 20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개정안은 통신요금 인가제가 통신사의 자유로운 가격 경쟁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발의됐다. 인가 심사가 진행되는 2~3개월간 시장점유율 2, 3위인 KT와 LG유플러스는 거의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모든 회사가 가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 가격 경쟁이 일어나고 통신요금도 낮아질 수 있다는 게 입법 취지다. 

물론 통신사들의 일방적인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완전 신고제가 아닌 유보 신고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신고된 요금제에 문제가 있으면 정부가 15일의 심사기간을 거쳐 신고를 반려할 수 있게 한 것. 

5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최기영 과기부 장관은 “과거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영향력이 매우 컸지만, 현 상황은 다르다”며 “알뜰폰사업자(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등 여러 사업자가 생겨 자유경쟁체제로 가면 요금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집중 심사하면 15일 만에도 충분히 심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통신요금 인가제 때도 자료를 제출받는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된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심사 기간(15일)이 너무 짧다”고 지적했다.

요금 인하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인하한 곳 없어

과기부, 국회와 달리 시민단체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5월 19일 열린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반대’ 기자회견에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통신사들은 인가제 폐지로 가격 경쟁이 활발해져 통신요금이 인하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현재도 요금 인하 시 신고만 하면 되는데도 통신사들은 인하하지 않고 있다”며 “인가제를 폐지해 통신사들의 가격 경쟁을 유도하고,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춘다는 것은 꿈같은 소리”라고 비판했다. 

이동통신 3사의 대항마로 기대를 모았던 알뜰폰사업자는 확실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이동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알뜰폰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기 어려운 이유는 비싼 스마트폰 가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는 할인 행사, 공시지원금 등을 통해 단말기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알뜰폰사업자는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2개 사용하는 사람이나, 휴대전화가 파손돼 잠시 중고 휴대전화를 써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알뜰폰을 권하지 않는다”며 “신형 스마트폰의 할부 가격을 생각한다면 알뜰폰사업자보다 오히려 이동통신 3사를 이용하는 편이 더 저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휴대전화 요금체계가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이후 통신요금시장에는 과연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까. 이동통신사 간 가격 경쟁이 붙어 소비자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순기능을 하게 될까, 아니면 인가제 때보다 더 높은 요금제를 소비자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만들어질까. 벌써부터 통신 소비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4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