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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제주지역 오름 전면 재조사 필요하다

입력 | 2020-05-27 03:00:00

골프장 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20여개 오름은 형체 구분도 어려워
제주도, 2023년까지 지질도 구축… 한라산지역 46개 오름 화산체 조사




오름으로 불리는 작은 화산체가 제주지역 곳곳에 솟아있는 가운데 화산체로 볼 수 없는 오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름이 중요 자원으로 부상한 만큼 지질도를 구축하는 종합조사를 통해 화산체 여부를 규명하는 일이 시급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6일 오전 제주시 연동 삼무공원. 이 공원은 1978년 전시용으로 육지에서 들어온 증기기관차와 함께 운동시설, 시계조형물 등으로 꾸며졌다. 이곳이 작은 화산체인 ‘베두리오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낮은 산체인데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자연적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고 주변은 주택, 상가 등 도심으로 변했다.

육지의 산처럼 여러 골짜기가 겹쳐진 듯한 형태를 보이는 한라산국립공원 아흔아홉골인 골머리오름에 대해서는 ‘오름’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가 많다. 화산체인 오름이 아니라 화산 분화로 흘러내린 조면암이 쌓여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름의 형태를 잃어버렸거나 오름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면서 제주지역 오름 전반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오름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는 1997년 이뤄졌다. 제주도는 당시 ‘제주의 오름’ 보고서를 내면서 오름을 화산쇄설물(스코리아·scoria)로 이뤄진 분석구를 비롯해 수중화산 형태인 응회환, 응회구, 마르 등으로 구분했다. 점성이 큰 조면암질 용암이 쌓인 용암원정구도 오름에 속한다. 조사 당시 분석구 335개, 수중화산 24개, 용암원정구 9개 등 모두 368개가 분포한다고 밝혔다. 조사는 항공사진 판독과 현장 조사 등으로 진행했다.

그동안 이 보고서를 기초로 각종 정책과 연구사업이 진행됐으나 일부 오름에 대해서는 오름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제주시 한림읍 방주오름은 단순히 화산쇄설물의 잔류체라는 분석이 있다. 서귀포시 토평동 인정오름은 화산활동과 관계없는 단순한 계단지형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골프장 건설이나 밭 기반 정비 등 각종 개발행위로 일부 오름은 형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이처럼 오름으로 인정하기 힘들거나 형체가 사라진 오름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름을 화산체로 구분하려면 우선 지질도(地質圖)가 작성돼야 한다. 항공사진 등을 통한 지형도만으로는 화산체인지를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968년 지하수 개발을 위해 제주 전역에 대해 처음으로 10만분의 1의 지질도가 작성된 이후 전체 지질도는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조사기법 등이 진전된 만큼 새로운 지질도를 작성해 오름의 화산 분화 여부는 물론이고 분화 횟수, 기간, 시기 등을 규명해야 하는 시점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한라산국립공원지역을 중심으로 지질도 구축사업을 추진한다. 한라산국립공원지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1년에 1개 지역에 대해 지질조사를 통한 용암류 분포영역을 처음으로 도면으로 제작한다. 암석 성분 분석 및 연대 측정을 통해 지질 구조 및 층서 등이 규명된다. 이 조사를 통해 한라산국립공원지역 46개 오름의 화산체 여부가 밝혀진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한라산지 지질도를 구축하면 토양 침식, 식생 변화 등에 대한 연구에 기여하고 지질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수도 있다”며 “한라산국립공원지역과 함께 저지대 오름에 대한 지질도 구축작업도 추진해 화산체로서의 오름을 규명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땔감, 산나물을 얻거나 우마 방목지 정도로 인식됐던 오름은 자연환경이나 인문 분야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제주의 최대 비극인 4·3사건의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 오름은 거대한 땅굴진지였다. 빗물을 정화시켜 청정 지하수를 만드는 필터링 역할도 한다. 삶의 터전이자 현장이었던 오름은 2000년대 들어 생태계 연구, 치유, 건강, 관광, 체험 등을 위한 중요 자원으로 부상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