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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카더라’에 흔들리는 워싱턴 [이정은 기자의 우아한]

입력 | 2020-04-26 10:33:00


김정은 건강이상설 뉴스 향한 관심 21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미국 CNN 방송의 ‘김정은 수술 후 위중설’ 보도를 전하는 한국 방송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CNN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는 건강 이상설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북한 내 특이 동향이 없다”며 부인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 여부를 놓고 워싱턴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연이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자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탓도 있지만 CNN방송이 ‘미국 소스’를 인용해 그가 중태에 빠져 있다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의 ‘공’이 미국으로 확 넘어온 느낌입니다.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접근이 어렵고, 특히 김 위원장에 대한 신상은 늘 극비에 부쳐지는 정보이다 보니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을 틈타 각종 설과 소문이 난무합니다. 북한과 가깝고 인적, 정보 교류가 많은 중국 발 정보 혹은 소문이 특히 많습니다. 그 때마다 당장 중국 발 소스를 확인할 길이 없는 워싱턴은 정신없이 출렁이지요.

한미 당국이 북한 관련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은 휴민트(사람을 통해 수집한 인적정보), 테킨트(인공위성과 정찰기 등을 활용한 기술정보), 이 과정에서 얻은 이민트(영상정보), 시긴트(통신 신호를 잡아내서 얻는 정보) 등이 거론됩니다. 최근에는 북한 관련 소문이 쏟아지는 것을 두고 ‘루민트(소문·rumor에서 얻는 정보)’라는 농담까지 나옵니다.

‘루민트’라고 쓸모가 없는 건 아닙니다. 초기 이상동향을 파악하는 데 입소문이 때로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니까요. 미국에서 북한을 다루는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처럼 북한 지도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번지는 시점에 시중에 떠도는 각종 소문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다 한국과의 시차 및 물리적 거리까지 장벽이 되다 보니 당장 정확한 북한 소식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감한 첩보 관련 사항은 정부 내에서도 극소수만 공유하기 때문에 이에 접근이 쉽지 않은 실무 당국자들이 이른바 ‘루민트’에 보이는 관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문을 가장 빨리 듣고 여기에 반응하는 이들 중에는 기자들이 포함됩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신변이상설이 보도된 이후 저에게도 사실 여부는 물론 이후 북한 후계구도 시나리오에 대해 묻는 워싱턴의 인사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지의 다른 외신기자들에게서 그들이 들었다는 정보는 다시 저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반도 사안을 들여다봐온 한 당국자도 초기에는 “김정은이 받은 수술이 실패했다고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초기에 수집되는 각종 소문의 진위 여부를 한국 기자들에게까지 교차 검증하고 확인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보였습니다. 한 싱크탱크 전문가가 전해준 소문 중에는 ‘김정은이 14일 원산에서 미사일 발사시험과 군사훈련을 참관하던 중 사고가 벌어져서 다쳤다’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고였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김 위원장의 ‘여성 3인방’으로 알려진 김여정, 현송월, 이설주가 그를 보살피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현재까지 김 위원장의 신변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테킨트와 시긴트, 이민트, 휴민트 등을 모두 종합했을 때 그의 주변이나 평양에 그의 신변이상설을 뒷받침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평양방어사령부의 활동, 최전방 주요 부대 경계수위, 평양 안팎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커뮤니케이션량 등을 근거로 판단한 결과라는 게 북한 정보에 정통한 워싱턴 외교소식통의 설명입니다. 정찰위성의 경우 사람의 개별 동선이나 얼굴까지는 아니어도 인력들이 집단 이동시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달돼 있죠. 김 위원장의 경우 측근 및 경호 인력들을 대규모로 동원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포착이 일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 위원장의 중태설은 수그러들지 않는 것일까요. 일부 소문 중에 북한과 교류가 밀접한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를 인용한 것들이 있어서 더 그럴 듯해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정통한 소식통은 “현재까지 중국에서 나오는 정보들은 모두 무시해도 되는 내용”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김 위원장의 신상 정보에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첩보로 돈을 벌려거나 이에 관심 있는 인사에게 접근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장사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이 전해준 내용 중 상당수는 중국 고위당국자에게 직접 들었다기보다 ‘그 인사가 그랬다고 하더라’ 식의 간접화법이 어느 순간 직접화법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김 위원장이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는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週刊現代)의 보도는 어떨까요. 중국 의료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는 내용 중에는 ‘김 위원장이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으며 쓰러졌다’, ‘집도 의사가 긴장해서 손을 떨었다’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 정보에 정통한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손을 떨었다는 등의 구체적인 묘사는 소설 수준”이라며 실소했습니다. 그는 “진짜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 혹은 김 위원장에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의 인사라면 김정은의 신상에 대해서는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며 “이런 묘사들이 오히려 정보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린다”고 말했습니다. 휴민트와 테킨트 등을 총동원해서 수집, 공유하는 한미 당국 간의 실시간 정보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다만 그렇다고 김 위원장에게 정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15일)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김 위원장의 신변에 관한 기사에 늘 신속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 당국이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 관심이 쏠렸던 인민군 창건일(4월 25일)에도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최종 판단은 유보한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25일(현지 시간) “조만간 김 위원장이 망원경이 올려진 책상 앞에 앉아서 군 훈련을 참관하고 있고 그 옆에는 오늘자 날짜가 찍힌 신문이 보란 듯이 펼쳐진 사진이나 동영상이 놓여있는 사진이 나올 수 있다”며 “이것이 합성사진인지 여부를 잘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신상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가 국제사회의 반응 및 후계구도에 대한 소문들을 수집하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는 조만간 드러나겠지요. 루민트의 진실도 곧 드러날 겁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석사)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