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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면역[횡설수설/우경임]

입력 | 2020-03-25 03:00:00


“국민 6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수 있다.” 패트릭 밸런스 영국 수석과학보좌관은 최근 코로나19 환자 상당수가 가볍게 앓고 지나가므로 서서히 유행하도록 해 ‘집단 면역’을 만들자는 충격적인 방역 전략을 주장했다. 그 후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연구진은 이런 논리의 위험성을 경고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치한다면 영국에서 51만 명이 사망한다는 것. “강력한 통제를 하면 사람들의 삶이 혼란스러워진다”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입장을 바꿔 23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면역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완쾌돼 항체를 갖게 됐다는 뜻이다. 집단 면역은 면역을 획득한 개인이 늘어나면 바이러스가 옮겨 다닐 숙주를 잃어버려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1930년대 홍역이 자연적으로 감소한 현상을 두고 처음 사용됐다. 홍역을 앓고 면역을 획득한 어린이들이 늘어나자 발병률이 급감한 것이다. 예방접종은 인위적으로 집단 면역을 만드는 방법이다. 1963년 예방접종이 도입된 홍역은 거의 사라졌다가 근래 들어 세계적으로 다시 유행했다. 2000년대 들어 홍역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예방접종률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다.

▷국내서도 코로나19 집단 면역이 처음 거론됐다.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인구 60%가 면역을 가졌을 때 코로나19 확산을 멈출 수 있다”(오명돈 위원장·서울대 교수), “기저질환이 없는 30대 이하 젊은이들은 치명률이 낮다. 일단 (이들에게)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고령자 등이 안전해질 수 있다”(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교수)고 밝혔다. 중앙임상위가 그동안 정부 정책에 미친 영향 때문에 정부가 방역 완화로 선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부랴부랴 정부는 24일 “우리 인구 70%가 감염되고 치명률 1%라 치면 35만 명이 사망한다”며 선을 그었다.

▷중앙임상위가 그런 견해를 밝힌 것은 확진자를 찾아내 격리시키는 데 총력을 투입하는 현 방식으로는 궁극적인 사태 종식은 요원하며, 집단 면역 생성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의학적인 딜레마를 설명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과 방역의 균형에 대한 질문을 던진 셈이다. 하지만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의 집단 면역론은 자칫 ‘더 많은 사람을 빨리 감염시켜야 사태가 종식된다’는 위험한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다. 섣부른 방역 정책 수정은 환자 폭증을 불러올 것이다. 무엇보다 집단 면역을 위해 먼저 아파도 되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