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용달을 하다 가족을 위해 17년 전 25인승 노란색 전세버스를 큰마음 먹고 산 이모씨(58). 매일 고양시 인근 학원가와 주택가를 누비던 이씨의 버스는 한 달 가까이 대부분 시간을 집 주차장에 놓여 있다. 이씨는 “17년 동안 이 만큼 절박한 적은 없었어. 내 신세가 이렇게 처량해질 줄 몰랐어”라고 말했다. 월 300만원을 벌던 이씨는 이번 달에 60만원이나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집에는 딸 둘과 제대를 앞둔 아들 한 명이 있다.
이씨의 부인은 인근 국수집에서 홀서빙을 한다. 식당 또한 매출이 급감해 사장의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든 상황이다. 부인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직 월급 삭감은 안됐지만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집 우편함에 꽂히는 보험료와 월세만 하더라도 25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 중에서도 부부는 노후를 위해 내고 있는 150만원의 보험료를 내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이씨는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유치원생과 고등학생, 직장인, 학원 수강생들을 버스로 싣어 날랐다. 지금은 오전에 한번 직장인을 출근시키는 일 빼고는 모든 일이 끊긴 지 보름이 넘었다. 이씨는 관광회사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의 형태로 고용된 기사다. 매달 30만원의 지입료를 회사에 내고 회사의 지침을 받고 일을 하지만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씨는 중국 공장의 잇따른 휴업으로 국내 공장도 운영이 어려워져 운송 건수가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상공회에서 코로나로 긴급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나중에 이를 갚을 일부터 벌써 가슴이 먹먹하다. 여씨는 “우리는 여유가 없다보니 그 돈을 갚으려면 무리해서 운전할 수밖에 없다”며 “대형차같은 경우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인데 아찔하다”고 말했다. 그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우는 외벌이 아빠다.
또 다른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교사 오수영씨(46·여)는 동료들이 카드 돌려막기로 생계비를 유지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새학기지만 학습지를 등록하는 학생 수는 반토막이 났고 학생별로 급여를 받는 이들의 주머니는 점점 비어갔다.
19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국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250만명에서 300만명 사이로 파악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휴직급여, 고용유지 지원금, 가족돌봄휴가지원제도 등 근로혜택을 받지 못한다. 아울러 노조도 설립할 수 없어 권리 주장도 힘든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한 생활안정을 위해 추가경정(추경) 예산에서 2000억원을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지원해준다고 밝혔다. 기존에 재차 특수고용노동자가 코로나19로 생계에 직격탄을 받고 있다는 노동계의 지적을 일부 받아들인 셈이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방침에 따르면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닌 산재보험의 적용이 되는 노동자만 해당돼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