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대화형 책제목’ 열풍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왼쪽 사진)와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책 제목으로 현재의 기분과 상태를 표현하는 젊은 독자들. 인스타그램 nim_gnos, limjiyeon87 캡처
서점가에 독자들의 취향과 기분을 대변해주는 제목이 인기다. 마치 책이 ‘지금 이런 기분이지?’ ‘딱 이런 게 필요하지 않았어?’라고 말을 걸어오는 식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제목에 열광하는 독자가 늘면서 책 제목은 과감한 구어체로 변모 중이다.
○ 제목으로 ‘나’를 표현하는 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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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에 지친 누군가의 투덜거림 같지만, 실은 요즘 나온 세 권의 책 제목을 연결한 것이다. 제목은 내용을 압축한 핵심어나 독자를 매혹시키는 미문(美文)이 아닌가 했던 이들에게 요즘 책 제목은 너무 구어적이어서 파격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책에서 배움보다는 공감을 원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선행 가나출판사 차장은 “요즘 독자들은 멘토의 ‘한 말씀’엔 큰 관심이 없는 반면에 공감과 위안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독서 인증’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이들에게 책 제목은 자기표현의 도구다.
“만약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이젠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셈이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올린다는 건 ‘늘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제목이 나를 대변할 수 있겠다 싶으면 사서 보는 거죠.”(서 차장)
실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두 책의 제목으로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각각 2만 건에 달한다. 이 제목에 감정을 이입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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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왼쪽 사진)와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 SNS 인증샷에서 해시태그와 함께 걸리기 좋은 책 제목이 인기다. 인스타그램 just_s.y_, spring3121 캡처
구어체 제목이 많아지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서술형) ‘그냥 다니는 거지 뭐’(자조형)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생략형)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감탄형) 식이다.
에세이 분야는 구어체 제목이 점령했다. 16일 현재 예스24 에세이 베스트셀러에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위),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8위),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9위) 등이 올라와 있다. 김태희 예스24 에세이 MD는 “제목 자체가 책의 킬러 콘텐츠가 되면서 공감을 자아내는 대화형 제목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라고 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