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연출팀이었던 윤영우 씨(33)는 “봉준호 감독은 동익의 집에 몰래 들어간 기택의 가족들이 어디에 신발을 벗어 놓았는지도 기억했다. 도망칠 때 어느 위치에서 신발을 신게 되는지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10번 이상 보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그린 ‘옥자’ 스토리보드. 미자가 옥자를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준 금돼지를 낸시 미란도에게 바닥으로 굴려 전달하는 장면. 옥자 스토리보드는 제작진이 소장용으로 20부만 만들었다. 조용진 씨 제공
옥자 로케이션 지도
봉 감독은 현장에서 “왜?”라는 질문도 자주 던진다.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촬영과 편집 장면까지 머릿속에 정해놓고 그대로 구현하는 제작 스타일로 유명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 씨가 ‘마더’에서 배우 진구에게 맞아 앞니가 부러지는 장면에서 봉 감독은 비명소리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질문했다.
“짧게 ‘악!’ 하며 내지르지 않고 비명을 길게 떨며 냈더니 봉 감독님이 ‘이렇게 비명을 지른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단순히 아픈 것 뿐 아니라 서럽고 억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하니 그 부분을 더 살려보자고 하셨죠. 매 장면마다 배우에게 질문하셨어요. 그런 감독은 봉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봉 감독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그 끈을 놓지 않는다. ‘마더’ 개봉 이후 ‘시간 되시면 오시라’는 문자 한 통에 정 씨가 출연한 연극 두 편을 모두 보러 왔다. 연극이 끝난 뒤 술을 사주며 “무대 위에서 너의 표정이 난 참 좋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했다.
시간을 쪼개 후배 감독들의 작업물을 본 뒤 의견을 말하며 섬세하게 챙기기도 한다. ‘옥자’를 함께 작업한 조 씨가 봉 감독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봐 달라고 부탁하자 당시 ‘기생충’ 시나리오를 쓰던 봉 감독은 집필이 끝난 직후 40분 분량의 음성파일을 보냈다.
“‘(기생충) 시나리오를 4~5개월 간 썼더니 키보드 만지기가 싫어서 음성으로 녹음했다. 저질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이라도 이해해 달라’는 웃음 섞인 봉 감독님 목소리에 저도 웃었죠. ‘이 길로 가자’고 하면 우르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최고의 선장이에요.”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