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 사진=뉴시스
“미국 없이 미래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이 12일자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직 국방장관이 최고의 우방이자 가장 강력한 군사동맹국인 미국을 배제한 ‘자주국방론’을 거론한 것 자체가 양국 간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월리스 장관은 인터뷰에서 “핵심 동맹국인 미국의 도움 없이 영국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며 “영국이 미국에 덜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 대비해 국방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국이 항상 미국과 함께 싸울 것이란 가정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미국의 공군, 정보 감시정찰 자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우리는 자산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를 줄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같은 월리스 장관의 발언은 보리스 존슨 총리 내각이 영국의 안보와 국방, 나아가 외교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BBC는 전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해 12월 조기총선 공약으로 “안보구상 전반을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미국이 3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사살하면서 최고 우방 관계던 영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존슨 총리는 5일 이란이 핵협정(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하자 ‘핵협정 유지’고 촉구했다. 핵협정 폐기를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180도 반대되는 행보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교장관도 솔레이마니 사살로 중동 내 긴장이 커지가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 만 좋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동 지역 전운이 고조되면서 IS 잔당 격퇴를 위해 이라크에 주둔하던 다국적군이 철수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이란 문화유적 공격 계획에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일 이란이 보복할 경우 이란의 문화유적 등 52곳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하자 영국 총리실은 “문화유적을 목표로 삼겠다고 위협한 것을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