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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영화보다 황홀한 ‘환상동화’

입력 | 2020-01-08 03:00:00

리뷰 / 뮤지컬 ‘빅 피쉬’
‘팀 버턴’ 감독의 동명영화 원작
배우들 호연과 달콤한 음악 인상적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 역의 남경주(가운데)가 첫눈에 반한 여인의 이름을 알기 위해 한 서커스단에서 3년 동안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CJ ENM 제공

무대에서 구현한 환상문학이 은은하게 부성(父性)을 노래한다. 연극적 판타지와 현실적 동화가 만나 원작의 컴퓨터그래픽(CG) 못지않은 황홀함을 준다. 극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어느 때보다 관객의 ‘동화적 눈’이 필요한 작품이다.

뮤지컬 ‘빅 피쉬’는 한 가족의 삶에 녹아든 이야기와 사랑을 통해 ‘당신은 어떤 이야기로 남을 것인지’ 되묻는 작품이다. 1막에서는 주인공 에드워드의 환상적 모험담과 운명적 사랑이 펼쳐지고, 2막에서는 그의 아들 윌이 모험담에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며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을 확인한다. 1998년 출간한 대니얼 월리스의 동명 소설과 2003년 팀 버턴 감독의 동명 영화를 각색해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최근 공연하는 국내 대형 뮤지컬 중 몇 안 되는 초연작이다.

유명 원작을 각색한 작품은 장르를 달리해도 원작이 줄곧 큰 벽이 되곤 한다. 뮤지컬 ‘빅 피쉬’ 역시 ‘팀 버턴표’ 환상영화와는 또 다른 판타지를 어떻게 관객에게 심어줄지가 가장 큰 관건이었을 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품은 무대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영리하게 구현했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무대연출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고, 달달한 넘버는 귀를 달랜다. 무대를 때리듯 귀에 꽂히는 넘버는 없다. 하지만 잔잔하면서 흥겨운 재즈, 컨트리 송, 팝 넘버가 더 큰 울림을 준다. 주인공 남경주, 박호산, 손준호를 비롯해 구원영, 김지우, 이창용, 김성철 등의 내공은 연극적 긴장감을 꾸준히 끌어올린다.

1막, 2막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 영화 속 CG 못지않은 황홀함을 준다. 무대 바닥을 빼곡하게 뒤덮는 수선화 밭 프러포즈 장면과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으며 강으로 회귀하는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와∼” 하는 탄성도 터져 나온다.

물론 여전히 손댈 곳도, 아쉬운 점도 많다. 극 중 거인, 마녀, 대포알을 타고 날아가는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특수의상과 인형을 택했다. 이 설정이 다소 유치하거나 어설퍼 극의 몰입을 깰 여지가 있다. 어느 작품보다 관객의 ‘동화적 눈’이 필요하다. 1막, 2막의 마지막 장면 연출에 공력을 ‘올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다른 장면은 상대적으로 단출한 느낌을 준다. 대사가 많이 오가는 병원 장면 등 곳곳에서 늘어지는 점도 아쉽다.

어찌 됐든 작품은 관객을 환상적 동화로 끌어들여 눈물샘까지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앨라배마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먼 타국의 이야기도 한국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웰메이드 사부곡(思父曲)의 재연도 기다려진다.

2월 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6만∼13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