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정규 솔로 앨범 낸 화가 겸 배우 겸 가수 백현진
서울 마포구에서 작업 중인 새 회화 앞에 선 예술가 백현진.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백현진이 11년 만에 솔로 정규앨범을 냈다. 제목은 ‘가볍고 수많은’. 13곡은 각각 여운이 긴 단편소설 같다. ‘늦여름’의 주인공은 마트 시식 코너에서 납작만두를 먹고 ‘가로수’에서는 빈소에서 나와 “이 병신아 죽긴 왜 죽냐”고 외치며 오줌을 눈다. 색소폰(김오키), 기타(이태훈), 건반(진수영)에 어우러진 백현진의 걸쭉한 목소리에 은근히 취한다. 시답잖은 서사가 감정의 파고로 건축돼 어느덧 덮쳐 온다.
“원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는 건 미디어에 의해 간접으로 느끼는 것들인데 사실 진짜 드라마는 본인의 일상에 있는 거죠. 자꾸 딴 데를 보다가 저 같은 사람이 너무 평범한 일상 같은 것을 떡 보여주면 그제야 뭔가 감정의 복잡한 움직임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가끔 매우 평범해서 아무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 가사를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너무 뻔하고 수많아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
“저 분노는 어쨌든 들려야 한다, 나는 들어야 한다는 심정이었어요. 홍대 앞에서 불안과 절망으로 점철된 어떤 청년이 어찌어찌하여 운 좋게 여기까지 왔잖아요. 하고픈 것만 하며 먹고사는 사람이 됐으니 제가 그렇게 경계하고 경멸하던 일종의 기득권에 저 자신이 속해 있는 거니까요.”
백현진은 촬영 중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재벌 2세 역을 맡았다. 휴대전화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진을 저장했다. 연구 목적이다. 이 부회장의 오묘한 웃음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고 한다. 영화 ‘경관의 피’에는 사채업자로 나선다.
“‘온전치 못하다고 말하는 어떤 국면이나 시간’ 따위에 관심이 있어요. 미술가로, 음악가로, 그리고 심지어 연기자로서 그런 것들을 계속 기록하고 드러내 보이려 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