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유족회, 당시 검찰보고서 공개… 보고서에 광주지검장 도장 찍혀 수신참고엔 법무부장관 등 기재… 19일 발굴된 신원불상 유골에선 무연고 묘와 달리 유류품 전혀 없어… 일각 “섣부른 연관성 단정 안돼”
5·18민주화운동 당시인 1980년 5월 22일 광주지검이 광주교도소와 통화한 뒤 작성한 동향보고서 일부.5·18유족회 제공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는 1980년 신군부가 5·18 희생자의 시신 수습반을 따로 운영했다는 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김후식 5·18부상자회장은 “누군가 신원 불상 유골 40구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류품을 감췄을 가능성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심이 든다”며 “5, 6개월 걸리는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옛 광주교도소는 계엄군이 주둔하며 시민군의 시 외곽 진출을 막았던 곳으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암매장 추정 장소로 끊임없이 거론됐던 곳이다. 5·18 직후 광주교도소와 주변에서는 희생자 11명의 시신이 수습됐다. 1980년 5월 말 광주교도소장 관사 주변에서 희생자 시신 8구, 건너편 야산(현재 농수산물 공판장)에서 3구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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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은 A 씨의 검찰 조서를 토대로 2017년 11월 옛 광주교도소 발굴 작업을 시작했고 제보가 잇따랐다. 하지만 그 사이 광주교도소의 지형은 많이 변했다. 신원 불상 유골 40구가 발견된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 옆에는 1990년대 경비교도대 건물이 신축됐고, 사형제가 폐지되면서 접근하는 길도 없어졌다.
법무부가 관리하던 무연고자 유골 41구는 1971년 광주교도소가 동구 동명동에서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할 때 합장됐다. 무연고자 유골 41구는 신원 불상 유골보다 많이 부식돼 있었지만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 것은 없었다. 신원 불상 유골에는 구멍이 뚫린 두개골이 3개 있다. 박석환 5·18구속부상자회 이사는 “일부 두개골에는 금이 가 있는 듯한 흔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원 불상 유골에는 유류품이 없었다. 더 많이 부식된 무연고자 유골에도 고무줄 링, 치료를 받은 치아, 뇌수술을 받은 자국 등 생전 흔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과학적 분석 전에는 신원 불상 유골을 5·18민주화운동과 연관 지어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가 관리하던 무연고자 유골 중에는 신원 불상 유골보다 상태가 더 양호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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