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국서 100명 넘는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하지만 그 사실조차 몰라 다문화 자녀 부적응 - 작업장 폭력 만연… 경제 논리로 접근한 탓 현 정부 철저한 외면과 무관심 일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국내 인구구조의 변화와 세계적 인구 이동의 영향으로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우리도 그들을 과거보다 익숙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한국의 이주민(移住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대개 결혼이주여성이나 해외 국적 동포를 떠올린다. 이에 반해 외국인 노동자는 단기간 일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인식 때문에 일하다 다치고 죽어도 최소한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이미 한국 경제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동티모르 등 저발전 국가 출신의 저임금 노동력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외국인 체류자 약 250만 명 중 단기 체류, 사증 면제, 단순 통과를 제외한 200만여 명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로 입국한 50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정부의 관리 밖에 있는 40만여 명의 미등록(또는 불법) 체류자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계속 머무르길 원한다. 잠깐 일하다가 떠날 사람들이 아니다.
외국인의 정주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주민은 선주민(先住民)인 우리의 생활세계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증가하는 이주민의 문제는 ‘인력 관리’와 같은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면 심각한 사회문화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 다문화가정 자녀의 부적응,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작업장 내 차별과 폭력, 미등록 불법 체류자의 증가, 일상 영역에서 선주민과의 갈등 등 사례는 수없이 많다.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는 저임금·저숙련 인력은 잠깐 활용한 후 출국시키고, 한국에서 오래 살 고급 인력을 유치한다는 정책 기조인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한 10여 년 전부터 유지해 오고 있다. 정작 해외 고급 인력은 한국으로의 이주에 관심이 없다. 정부의 정책이 이주 정책이 아닌 외국인 정책으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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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아시아에서 이주민 정책에 관해서라면 가장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부조차 최근 현실을 인정하고 이민 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이주민 관련 정책 하나 내놓지 않고 철저한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남방외교를 표방하며 사증 면제를 통해 불법 체류자를 두 배 가까이 늘려 놓았을 뿐이다. 이주 사회에 대한 무지가 낳은 결과다. 더 서글픈 사실은 이주민 정책의 부재를 비판해도 책임을 느낄 관료나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경제 논리 중심의 외국인 정책과 체계적인 이민 정책 전담기구의 부재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확실히 문재인 정부가 계승하는 촛불정신에 이주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