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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다른 별[동아광장/김이나]

입력 | 2019-12-06 03:00:00

뛰어난 기억력-매끄러운 진행 능력… 스타MC들의 저마다 다른 장점 눈길
우리도 각자 다른 색깔 지닌 사람들… 오래 들여다보면 그대도 반짝 빛난다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나는 여러 종류의 일을 하며 “그것을 잘한다”는 말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을 말하는지 살펴보길 좋아한다. 예컨대 잘나가는 작곡가는 단지 좋은 멜로디를 쓰고 편곡을 잘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녹음실에서 가수와 섬세하게 소통해 최고치를 이끌어낼 줄 아는 것. 가수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매력은 드러내고 약점은 감추는 곡을 만들 줄 아는 것. 곡마다 다른 특성을 각각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를 구별해 선정하는 것 등등. “곡을 잘 쓴다”고 ‘퉁치는’ 평가에는 외부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런 디테일한 강점들이 있다. 디테일이 모여 걸작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일은 여간해선 질리지 않는다.

예능 초보인 내 입장에서 본 최고의 MC들도 마찬가지다. ‘매끄러운 진행 능력’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면면은 흥미로웠다. 예능 프로는 제한된 시간에 촬영한 것을 편집해 완성하는 결과물이다. 제한된 시간은 여러 가지 현실을 의미한다. 우선 ‘선수’가 아닌 사람들이 출연하는 예능은 소위 ‘건질 만한 이야기’만 할 순 없기 때문에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이럴 때 MC는 적당한 때 말을 끊고 다른 국면으로 넘겨줘야 하는데, 말이 끊기는 입장에서는 이 순간이 여간 무안한 게 아니다. 겨우 긴장을 풀고 말을 하다 역시나 싶어서 움츠러들면 다시 활개를 치기란 첫마디를 떼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건, TV를 통해 나가는 대부분의 말을 끊는 장면은 그런대로 재미가 있어서 나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말하는 부분은 TV로는 볼 수 없는 순간들이다. 최고라 불리는 한 MC는 이런 순간을 예능 초보들이 최대한 무안하지 않도록, 어린아이의 흔들리는 치아를 쏙 뽑듯 쥐도 새도 모르게 정리해 낸다. ‘TV에 나가지도 않을 장면인데 뭐 그런 것까지 배려해야 하냐’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녹화가 끝날 때까지의 출연자 텐션(긴장)이 프로그램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거의 운동신경에 가까워 보이는 이 능력치는 나 역시도 몇 개의 프로를 해보고서야 희미하게 보였다.

‘츤데레(쌀쌀맞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정한 사람)’로 유명한 한 MC는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놀라운 경청 능력을 가졌다. 여러 패널이 있는 프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했던 멘트를 모두 기억하고 공감하며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이런 프로는 프롬프터(진행 멘트가 뜨는 모니터)에 의지한, 약간은 기계적인 진행을 하는 것이 미덕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멘트들을 가슴에 담았다 빼는 게 느껴졌다. 그 사람이 내게 던지는 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많은 패널들을 어찌나 잘 관찰하는지 누가 말을 하고 싶어 하거나 질문을 피하고 싶은지 귀신같이 알아챈다.

예능이 정글에 비유되는 이유는 알아서 본인의 분량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방청객 인터뷰의 1인자’라고 평가하는 MC가 있다. 사실 방청객 인터뷰라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카메라가 다가가고 모두가 자기를 집중할 때 방송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황부터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경계심과 긴장감을 풀어내고 참여하게 하는 능력은 특별하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은 이 모든 능력을 한 번에 갖춘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것들은 각기 다른 장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로 최고라 여겨진다. 이 외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TV에 나오는 모든 이에게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자주 나오지?’ 싶은 사람이 있을 땐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두운 하늘을 오래 보다 보면 조금씩 별이 보이는 것처럼 그 사람의 장점이 보이는데, 그 순간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이런 세세한 부분들은 ‘당연한 나의 일’이 돼버리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 예능의 사례를 길게 든 것은 내가 초보이기에 더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과연 무엇을 잘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기준에서만 보면 우리는 모두 부족할지언정 어느 하나 또는 그 이상을 남들과 다르게 해내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엔 아주 하찮은 부분이 ‘나만의 무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댁 어른들이 명절날 가져간 ‘엄마표’ 육전을 보며 “계란 지짐이를 이렇게 말끔하고 튀어나온 부분 없이 곱게 만들다니!”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내 눈에 모든 전은 그저 ‘전’일 뿐이었다. 이 말을 전하니 엄마는 머쓱해하며 “그게 뭐 대단한가”라며 배시시 웃는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반짝인다.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