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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건축가의 아이디어로 어둡던 반지하에 쨍하고 볕들다

입력 | 2019-12-05 03:00:00

[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 <6> 서울 반지하주택 6곳 리모델링




서울 강남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옥에서 ‘SH 공간복지 스타트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 건축가들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SH공사가 노후 주택을 매입하면 청년 건축가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수리해 새로운 공간복지 시설로 꾸미는 사업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3층짜리 주택 반지하. 33m²(약 10평) 남짓한 공간은 오랜 기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철문을 연장으로 뜯어내고 들어가니 벽지, 장판은 모두 뜯겨 있었고 낡은 변기만이 덩그러니 보였다. 흉가처럼 방치된 이곳은 내년 커뮤니티 다이닝(공유 식당) 공간으로 바뀐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올해 9월부터 빈 공간 활용 방안을 청년 건축가들과 함께 모색하는 ‘SH 공간복지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SH공사가 매입한 노후주택 반지하 공간을 청년 건축가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수리해 새로운 마을 공간복지 시설로 꾸미는 사업이다. 공간복지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체육시설, 독서실, 노인정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갖춰 주민들이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 ‘주택 반지하’에 커뮤니티 다이닝 공간


올해 3월 ‘제5회 SH청년건축가 설계공모전’에서 수상한 6개 팀 14명의 청년 건축가가 이 프로젝트에 합류해 반지하 공간 6곳을 리모델링한다. 종암동 반지하 공간은 김민종 씨(26) 등 고려대 건축학과 학생 3명이 맡았다. 이들은 현장 답사를 한 뒤 주민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이 일대엔 주민이 모일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종암동 주택가는 도시계획에 따라 인위적으로 형성된 동네가 아니다. 공원, 쉼터 등 주민 편의시설이 부족했다. 김 씨는 “일대를 다녀보니 주민들이 사무용 의자를 골목길에 내놓고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 등은 항상 열려 있고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 다이닝 공간을 구상했다. 여기에다 소박한 음식이나 차 등을 곁들인다면 더 좋은 방법이다. 이들은 직접 음식을 만들고 주민들을 초대해 대접하며 소통하는 시간도 만들 예정이다. 정승준 씨(29)와 김래빈(26) 씨는 “학교 수업에서 가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매우 자세하게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 주부를 위한 ‘차 마실 공간’

중앙대 대학원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김은석 씨(27)는 구로구 개봉동의 한 주택 반지하 공간을 맡았다. 개봉동은 주민 구성에서 노인 비율이 높은 편이다. 김 씨는 이런 점을 고려해 노인 복지시설을 구상했다. 하지만 담당한 주택은 오르막길과 계단을 거쳐야 진입할 수 있다. 노인들이 자주 드나들기엔 어려운 환경이다. 또 일대에는 경로당, 주민센터 등 다른 편의시설도 많다.

김 씨는 주민 인터뷰를 실시했다. 40명 이상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30∼50대 주부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가까운 공공도서관 정도에 갈 수 있는데,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커피숍을 자주 가기엔 금전적인 부담이 컸다. 자녀 등하교 시간 때문에 주민센터, 문화원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 씨는 반지하 공간(33m²) 중 70% 정도 면적에 의자, 테이블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커피메이커 등 차를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조리기구도 구비된다. 주택 인근 마당, 정원 등을 활용해 작은 텃밭도 만들 예정이다. 김 씨는 “전문 강사를 초빙해 ‘맘키움 강의’ 등의 이름으로 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열려고 한다. 주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채소 등 작물이 생산되면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 집수리 방법 알려주는 건축학교

건축설계사무소에 근무하는 건축가 김대청 씨(28)와 김요셉 씨(28)는 구로구 오류2동의 한 주택 반지하 공간 59.9m²(약 18평)를 맡았다. 이들은 일대에 마을 단위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된다는 점을 고려해 ‘건축학교’를 개설하기로 했다. 간단한 집수리, 리모델링 등은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 건축 전문가를 초빙해 워크숍, 강의 등을 열고 주민들이 교류하며 도시 재생에 직접 참여하게 만들 계획이다. 김대청 씨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했다”며 “건축학교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도시를 재생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천구 신월동, 성북구 정릉동 등 다른 3곳의 주택 반지하 공간에는 마을 자료실, 전시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SH공사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 건축가들은 공간복지 등 관련 전문가들에게 사전 교육, 멘토링 등을 받았다”며 “도시 재생에 기여하는 창의적인 건축가를 더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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