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단 ‘스튜디오콘크리트’ 운영하며 예술의 물물교환 기획 유아인
유아인은 “결핍과 욕망으로 나를 불태우기만 하던 시절을 지나고 스무 살 무렵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이뤄졌다. 주변에 고민하는 친구들에게도 점집이나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지 말고 글을 쓰라고 권한다”고 했다. 스튜디오콘크리트 제공
검은 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가 “프로젝트가 어떠냐”고 물었다.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묻자 좋다고 답하더니, 자신도 스마트폰을 슬쩍 기자 앞에 내밀었다. 이날 인터뷰를 프로젝트 영상에도 사용하겠단다.
“매번 인터뷰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저도 인터뷰어가 되니 신나네요.”
프로젝트에 대한 감상이 몇 차례 오가자 유아인은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솔직하고 대담하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초(超)가치’ 예술 실험이라 소개했어요.
―집까지 내놓았다니 놀랍습니다.
“과거에는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 집 마련은 도와드렸지만, ‘내 집 장만’은 5년 전이 생애 처음이었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게 결국 ‘내 집 갖기’잖아요. 그런데 좋은 집에 편안하게 살지만, 삶의 불안과 의심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또 경제활동은 계속할 거니까….”
―‘부동산’이 물물교환 대상이 될 수 있나요.
“구체적인 건 변호사와 상의 중이에요. 집을 공공 미술관이나 마을회관으로 전환시킨다든지 하는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죠. 다만 누구나 선망하는 ‘부동산’이 주는 느낌을 파괴하고 싶었어요. 이걸 재료로 흥미로운 논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은 맘에 들건 말건, 생긴 그대로일 뿐이에요. 바꾸고 싶은 건 저 자신이죠. 세상이 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누군가 이겨야만 하고 패배자가 생기고, 그 과정이 반복되지만 완전한 승리는 없잖아요. 그런 판을 깰 순 없지만 새로운 판을 실험해볼 순 있죠. 여기서 몰랐던 나의 가치를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흥미로운 판 아닐까요?”
‘스튜디오콘크리트’는 2014년 유아인이 화가, 설치미술가, 사진가, 디자이너 등 젊은 창작자와 시작한 창작집단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스튜디오 공간은 예술 문화 콘텐츠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현재 열리고 있는 권철화 작가의 개인전 ‘TANGO’. 오른쪽 사진은 스튜디오콘크리트 외부 모습. 스튜디오콘크리트 제공
“다들 ‘뻘짓’ ‘딴짓’ 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과연 ‘본업’이란 게 뭘까요. 사회적 일과 개인의 일에 경중은 없다고 봐요. 제 행동이 ‘헛짓거리’라고 끊임없이 폄하되지만, 나를 던지고 피드백을 얻고 이해를 넓혀가는 것. 그게 결국 나의 삶을 사는 일이죠.”
―스스로 폄하 당했다고 느낍니까.
―보통 연예인은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않나요.
“다들 자기 멋에 사는 거죠. 그런데 ‘왜 유난을 떠냐’고 물으면 ‘그게 멋있어서’라고 답할 거예요. 우리가 멋있다 생각했던, 사업을 일으키고 환호받는 스타들이 뒤에서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 낱낱이 봤잖아요. 일반화는 아니지만 그런 삶이 멋있진 않아요.”
―배우의 길이 그렇다고 느끼나요.
“배우로서 제 삶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선망하는 배우의 모습은 아니죠. 때로는 배우의 일이 나의 몸뚱이와 그것이 빚은 환상을 파는 일처럼 느껴져요. 다들 내숭떨지 말라고 하세요. 최고의 자극을 주려는 게, 결국은 ‘섹스’를 파는 행위죠. 노출을 하거나 성적 이미지를 자아내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가운데 프로젝트가 큰 자존감을 줬어요. 자존감이 항상 떨어졌거든요.”
―왜 자존감이 떨어졌나요.
“진실되게 일하는지 의구심이 있었어요. 주변에선 밖에 나갈 땐 가면 쓰고, 집에 돌아오면 ‘캅사이신’ 먹으면서 뿅 가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이런 식으로 균형을 맞춰요. 그게 아니라 자신을 실험하는 거죠. 사람들이 ‘잠은 언제 자나’ ‘일은 방해되지 않냐’며 놀라요. 여전히 고민은 있지만, 훨씬 더 살아있다 느끼는 건 확실해요.”
―‘페어아트 1111’을 미술계도 공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만든 판이니 어떨지는 모르죠. 다만 스튜디오를 만든 뒤에 유아인이라는 ‘치트키’를 활용해 높은 위치에 있는 예술인이나 행정가들을 만났는데, 그때 환멸을 느꼈어요. 작가의 가치를 위해 그들과 교분을 맺고, 평론가에게 알랑방귀 뀌고 이런 행위가 재미없어요.”
―유아인에게 예술이란 뭡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 존재의 본질을 따지며 자연스레 예술을 만났습니다. 나는 기계로 태어난 인간인가, ‘버닝’되어야 하는가 고민했죠. 내 삶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시작해서, 제가 느끼고 소화한 예술을 소개하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 1111’입니다.”
유아인은 현재 영화 ‘Alone(가제)’ 의 지방 촬영 중이다. 이날도 어렵게 하루를 짬 내어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 날 다시 내려간다며 “‘물건 팔기 위해서가 아닌’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