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무언가를 만드는 뿌듯함을 어디 비할까. 제품을 직접 만들어 쓰며 생산자로 변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수 하기에는 힘든 일이 많다. 어느 정도 손질된 재료나 ‘반(半)제품’을 활용해 수고는 최소화하고 만드는 기쁨은 최대한 누리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간부터’ 만드는 셈이다.
2년 전부터 취미로 전통 목공을 배우는 김상진 씨(58)는 식탁, 사방탁자(사방이 트이고 여러 층으로 된 전통 탁자), 의자, 휴대전화 거치대, 좌탁(坐卓) 등 웬만한 목조 가구를 만들었다. 초심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관은 단연 나무를 정확히 재단하는 것. 마름질이 잘못되면 ‘짜맞춤’(못을 쓰지 않고 목재를 연결)을 하는 건 바라기 어렵다. 그래서 재료는 마름질한 채로 공방 ‘난가소목’(경기 과천시)에서 받는다고 한다. 난가소목의 정종상 소목장(51)은 “개인이 기계톱을 갖고 있기는 어려우니,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다듬은 재료를 활용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했다.
요즘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 하면 원하는 치수에 맞춰 재단한 목재를 배달해주기도 한다. 역시 목재로 쓰레기통, 수납장 등을 만들어 쓰는 송인석 씨(40)는 “원목부터 손질하면 가장 좋겠지만 다듬어진 목재로 만들어도 내 손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는 기쁨은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최대 직경 355mm(약 14인치)의 반사경을 만들고 경통 등 다른 부속을 결합하는데, 초점 조절 장비는 기성품을 쓰고, 망원경 앞뒤를 막는 금속 부품은 온라인으로 도면을 보내면 배달해준다. 이렇게 만든 망원경은 보급형보다 정밀도가 높고, 행성 사진을 고배율로 촬영할 수 있다. 한 씨는 “상상하던 망원경을 정성 들여 현실로 만들면 희열과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반제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경에는 취미와 여가로 ‘DIY’를 즐기는 층의 확대와 불경기 속 ‘가성비’ 소비문화가 맞물려 있다. 한국소비자원장을 지낸 이승신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다듬은 재료나 반제품을 공급하는 틈새시장에서 다양한 창조적 스타트업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이들을 위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