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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오염된 물로 농사 지으라고?” 살처분 돼지 침출수 ‘뒷북 논란’

입력 | 2019-11-12 17:21:00


10일 경기 연천군 중면의 임진강 상류 마거천 모습.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민간인출입통제선 안 유휴부지에 쌓아 놓은 살처분 돼지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유입되면서 강물이 붉게 변했다.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제공

“하천에서 물 끌어다 농사짓는데…”

12일 경기 연천군 중면에서 만난 이응진 씨(75)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 차원에서 도살 처분한 돼지 사체에서 나온 핏물로 하천이 물들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곳이다. 배추농사를 짓는 이 씨는 “피로 오염된 물로 농사를 지으라는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인근 주민들은 악취 피해를 호소했다. 한 주민은 “어제 돼지가 매몰된 곳 주변에서 대파를 뽑았는데 악취 때문에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며 “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하천을 따라서 퍼졌다”고 했다.

주민들은 연천군과 방역당국의 부실한 대응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김영순 씨(65·여)는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축사도 마음대로 못 짓는데 이런 곳에 돼지 사체를 방치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사체가 쌓이면서 압력이 생기자 아래쪽에 쌓여 있던 돼지 사체에서 피가 터져 나온 것”이라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는데도 연천군과 방역 당국의 관리 부실로 하천이 오염됐다”고 지적했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환경부, 지자체와 합동 점검반을 꾸려 이미 조성된 매몰지 101곳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사체 운반 때도 비닐로 덮는 등 핏물이 새지 않게 해야 하는데 소홀함이 있었다”며 “지자체들이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매몰조치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예방적 살처분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그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벌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동아일보 DB


농식품부와 환경부는 문제가 된 돼지 사체는 ASF에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은 12일 돼지사체 침출수가 유출된 매몰 처리지에서 인근 하천부터 임진강까지 구간에서 4곳의 물을 확보해 검사를 의뢰했다. 바이러스 검출 여부는 2, 3일 걸릴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핏물이 스며든 하천에서 임진강까지 13km 거리고, 거기에서 취수장까지는 2~3km 더 떨어져 있다”며 “핏물이 흘러간 길이는 200~300m로 파악하고 있으며 현재 펌프로 핏물을 제거했고 웅덩이에 핏물 등 침출수를 모아 하수처리장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돼지를 쌓아둔 장소에도 바닥에 FRP 천이 깔려있어 일시적으로 핏물이 넘친 것 외에는 토양으로 침출수가 유출될 우려도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해당 돼지 전수를 대상으로 ASF 감염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만큼 바이러스가 하천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정향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샘플조사를 거친 만큼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ASF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100% 장담하긴 어렵다”고 했다.

연천=이소연/세종=주애진/강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