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이응노미술관
이응노미술관의 시작점인 입구 부분. 지붕의 격자보가 보이고, 소나무 뒤로 미술관의 동서를 관통하는 긴 벽이 보인다. 전면에 벽돌벽이 관통하는 부분이 로비다.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곳은 전통 건축의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고, 또 프랑스 건축가가 국내에 세운 ‘원조 코르뷔지앙(Corbusian·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추종자들)’ 건축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무엇이 그렇게 남다른가.
둘째, 벽이다. 특히, 이 미술관을 동서로 관통하는 긴 벽이다. 이 벽은 지붕 격자보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전시실을 남북으로 나눈다. 남측 전시실은 단층이라 천장고가 높고 밝으며, 북측 전시실은 중층이라 천장고가 낮고 어둡다. 이는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른 고암 이응노의 회화와 도자, 조각 세계와 만나려는 건축가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 긴 벽은 서측 시작점에서 두 그루의 소나무와 더불어 근사한 입구 영역을 만들고, 동측 끝점에서 인공 풀과 더불어 조경 영역을 만든다. 특히 끝점에서 벽을 지면에서 띄운 길이가 상당한데 이 점을 건축가는 저녁에도 강조하고 싶었는지 바닥 조명을 벽 앞뒤로 설치했다.
여기뿐만 아니라 건축가는 격자보 끝단 바닥에도 조명을 심었다. 사실 이 미술관 주변에 설치한 바닥 조명들이 무엇을 밝히고 있는가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는 것은 보두앵의 생각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이 미술관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셋째는 기둥이다. 보두앵은 네오 코르뷔지앙 건축가다. 먼저 입구 기둥을 보자. 보통 보라고 하면 사람이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했을 때의 팔처럼 몸 앞에 있지 머리 위에 있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서는 격자보를 기둥머리 위에 얹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한 수인데 사실은 별것이다. 이 한 수로 기둥은 경쾌함을, 지붕은 가뿐함을, 벽은 가벼움을 얻는다. 그 덕분에 기둥과 지붕 격자보와 벽이 잠긴 관계가 아니라 풀린 관계가 된다.
마지막은 빛이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은 빛 아래에 볼륨들을 정확하고 장엄하게 모으는 작업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보두앵은 이를 교본으로 삼고 있다. 지붕에서, 전시실 내부 나무 차양 장치에서, 유리 표면에서, 수면에서, 또 벽면에서 보여준다. 사실 빛은 늘 변하기 때문에 한순간을 포착해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순간적인 조건이 맛이기도 하다.
고암의 예술 세계와 보두앵의 건축 세계가 만나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가을 체험을 드높인다. 지붕과 벽과 기둥이 빛의 갈래를 나누고, 빛의 결을 일으킨다. 빛이 춤을 추니, 그림자가 춤을 춘다. 가을 창공이 더 맑아 보이고, 가을 단풍이 더 물들어 보이는 이유다. 이 가을을 한층 밀도 있게 누리고 싶다면, 이응노미술관에 그 기대를 걸어보자.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