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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산후우울증 느는데… 여전히 ‘혼자 끙끙’

입력 | 2019-10-10 03:00:00

저출산에 산모수 대폭 감소에도 산후우울 고위험군 3년새 2.7배
보건소 방문시 센터상담 의뢰 가능… 실제 연계율은 30%대 불과
“산모가 무기력-우울감 보이면 다그치지 말고 병원 방문 도와야”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화가 자꾸 첫째 아이에게 옮겨갑니다. 화를 억제하는 게 너무 어려운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30대 여성 A씨는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돼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찾았다. 최근 첫째 아들에게 화를 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죄책감이 커졌고 자꾸만 자해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독박육아(혼자 양육을 책임지는 것)’로 힘들어했다. 남편은 퇴근 후 TV나 스마트폰을 보느라 육아를 돕지 않았다. 여러 번 문제 제기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A 씨의 분노는 첫째에게 향했다. A 씨의 산후우울 선별검사 점수는 26점. 30점 만점인 이 검사에서 13점 이상이 나오면 산후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저출산이 이어지면서 산모 수는 매년 줄고 있지만 A 씨처럼 산후우울증 고위험군 판정을 받는 사례는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보건소 산후우울증 판정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보건소에서 시행된 산후우울 선별검사에서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산모는 8747명이었다. 2015년 3201명, 2016년 5810명, 2017년 8291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반면 산모 수는 2015년 43만1000명, 2016년 39만9000명, 2017년 35만 명, 2018년 31만9000명 등으로 계속 줄고 있다. 산모 수는 정부에서 따로 집계하지 않아 통계청의 ‘출생 통계’에 나와 있는 출생아 수로 계산한 추정치다.

보건소는 방문한 산모를 대상으로 산후우울 선별검사를 한다. 검사에서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산모에게는 인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의뢰서를 써준다. 그러나 산모의 동의가 필요해 실제 연계율이 최근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산후우울증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산모 중 보건소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상담을 의뢰한 경우는 2015년 1919명(60%), 2016년 2623명(45%), 2017년 3995명(48%), 2018년 3014명(34%)이었다. 서울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상담을 받아봤자 해결이 되겠느냐’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연계를 원치 않는 산모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산후 우울감은 산모의 90%가 겪는 흔한 증상으로 수일 내에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산모의 10∼20%는 식욕 변화, 무기력증 등이 수반되는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산모의 0.1%는 망상, 환청 등을 동반한 산후정신증을 앓기도 한다. 이런 경우 아이에게 해를 가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어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산모가 무기력하고 멍한 모습을 보이고 아이 키우는 것을 힘들어하면 산후우울증일 확률이 높다”며 “이럴 때 가족들이 ‘의지가 약하다’고 다그치면 안 되고 산모가 병원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핵가족화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산모의 육아 부담이 큰 데다 직장 여성들은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크다”며 “힘든 건 없는지 물어봐 주고, 산모가 일주일에 하루라도 쉴 수 있게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등 주변의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