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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최면으로 피해자 진술 확보… 9차례 설득에 이춘재 입 열어

입력 | 2019-10-02 03:00:00

화성연쇄살인 등 14건 자백까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데엔 법최면 기법으로 확보한 사건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진술과 이춘재를 면담한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의 설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법최면으로 부활시킨 진술이 결정적 역할


경찰은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이춘재가 무기수로 복역 중인 부산교도소로 모두 9차례 프로파일러를 보내 대면조사를 벌여 왔다.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았던 공은경 경위(40·여)가 진술분석팀장을 맡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소속 2명과 전국에서 활동 중인 베테랑 프로파일러 6명 등 총 9명이 투입됐다.

프로파일러들은 이춘재와 라포르(rapport·신뢰감으로 이뤄진 친근한 인간관계)를 쌓는 한편 법최면 기법을 통해 확보한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을 제시하며 범행 자백을 유도하는 전략을 택했다. 법최면은 과거의 어렴풋한 순간적인 기억을 극대화하는 수사기법이다.

특히 경찰은 지난달 26일부터 이춘재의 여죄로 의심되는 미제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성을 폭넓게 조사해 왔다. 이 중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한창이었던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 사이에 화성에서 성폭행을 당한 30대 여성 A 씨도 있었다. A 씨는 지난주 1시간가량 법최면 조사를 받으며 당시 성폭행범이 자신의 옷을 사용해 손을 묶은 사실을 떠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가 다른 화성 사건의 피해자를 살해할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수법이다. A 씨가 묘사한 범인의 인상착의도 이춘재와 유사했다.

경찰이 법최면 조사를 한 또 다른 30대 여성 B 씨는 이춘재가 충북 청주에 거주한 1991년부터 1994년 1월 사이에 청주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B 씨의 진술도 A 씨와 비슷했다. A 씨와 B 씨의 사건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최근 피해자들이 스스로 “날 성폭행한 범인이 이춘재인 것 같다”고 제보하면서 조사가 이뤄졌다.

1988년 9월 7번째 화성 사건 직후 용의자를 목격하고 몽타주 작성을 도운 시외버스 안내양 엄모 씨도 최근 경찰의 법최면 조사에서 “당시 용의자의 생김새가 이춘재와 똑같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런 구체적인 진술에 이춘재는 지난주부터 입을 열기 시작해 1일까지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이춘재 여죄 캐려 미제사건 100건 추가 분석


여기에 5차, 7차, 9차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유전자(DNA)가 검출된 데 이어 4차 사건 피해자의 속옷 등 증거물에서도 DNA가 확보된 점, 이춘재가 강도예비 혐의로 구속된 1989년 9월부터 1990년 4월까지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다가 석방된 지 7개월 만에 다시 사건이 벌어진 점을 들어 추궁한 것도 이춘재의 입을 여는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이춘재가 가석방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자포자기로 거짓 자백을 했거나 여죄 수사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범행만 시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춘재가 군대에서 제대한 1986년 1월부터 1994년 1월 사이에 화성, 수원, 청주에서 발생한 미제 성폭행, 살인, 실종 사건 약 100건을 분석하는 한편 이 중 성폭행 사건의 생존 피해자 10여 명을 추가로 조사하기 위해 접촉 중이다.

특히 이춘재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7번째 범행 직후 경기 수원시로 향하는 버스를 탄 점, 이춘재가 강도예비 사건을 저지른 지역이 수원이었다는 점에서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유사 사건과 이춘재의 연관성도 추적하고 있다.

이춘재는 범행을 자백한 후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정 당국 관계자는 “이춘재는 반복되는 경찰 조사에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도,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는 등 변화를 보이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