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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염치한 386세대 되지 않으려면[오늘과 내일/김광현]

입력 | 2019-09-26 03:00:00

청년세대에 짐 될 국민연금 당장 손봐야 하는데
뻔뻔한 정치권·정부 개혁 의지도, 겨를도 없어




김광현 논설위원

거의 넉 달째 계속되던 홍콩의 격렬한 반중 시위가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범죄인 송환 법안이 ‘죽었다’고 발표하면서 한풀 가라앉았다. 시위의 표면적인 이유는 송환법안이 홍콩의 자유를 훼손하고 민주투사를 대상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런데 23일 홍콩의 유력지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이에 대한 색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이번 시위의 근본 원인이 살인적인 집값과 이에 따른 양극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콩의 소득 중간층 직장인이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1년을 모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천정부지로 높아진 집값으로 민심이 불만에 가득 차 있었는데 여기에 범죄인 송환법이 불을 댕겼다는 분석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20대 청년층에서 높은 이유는 ‘정의’ ‘공정’ 같은 보편적 가치 훼손에 대한 분노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밑바닥에는 자신의 취업 문제와 경제 사정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취업난은 자신의 문제이거니와 주변에서 직접 듣고 보기 때문에 불만을 느낄 여지라도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청년 세대에게는 소리 없는 적이다. 슬그머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고 있는 부담이다.

현행 국민연금의 구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금은 매달 소득의 9%를 내면 65세에 자신이 평생 받은 급여의 40%를 받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올해 초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민연금에 20년 가입하면 20년간 납부액의 최소 1.4배에서 최대 3배까지 받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이만큼 훌륭한 노후대책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의 혜택은 누군가의 비용이다. 연금 문제는 시간의 문제다. 지금 세대의 혜택은 나중 세대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단순하고 확실한 산수 차원의 계산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재정추계에 따르면 지금 구조를 유지하면 2041년 국민연금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에 완전히 고갈된다. 알기 쉽게 1995년생인 지금 24세 청년이 65세가 되는 2060년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완전히 바닥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더 이상 줄 기금이 없으니 그때 내고 그때 받아가는 부과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낸 만큼 받아가려면, 즉 보험료 대비 수혜액 비율을 1로 유지하려면 자기 소득의 3분의 1인 33%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아니면 얼마 전 그리스처럼 수령액을 왕창 깎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 9%인 보험료 납부율을 최소 2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 세대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는 연금개혁은 늦추면 늦출수록 후세대에게 불리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연금 문제는 ‘세대 간의 전쟁’이라고 불린다. 당장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장기플랜을 가동해도 결코 빠르지 않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개혁 문제를 다룰 겨를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피해 당사자인 청년 세대는 당장에라도 당신들 문제는 당신들이 해결하라고 윗세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식 세대로부터 386세대는 취업난 걱정 별로 안 하고, 현직에 있을 때부터 누릴 것 다 누리고, 연금폭탄을 뒤로 넘겨가면서, 늙어서까지 혜택을 받아가는 정말 몰염치한 세대였다는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