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이익엔 정파 없이 피 끓는 게 미국 청와대 안보실, 상대방 제대로 알고 있나
이승헌 정치부장
예상을 뛰어넘는 워싱턴의 반응에 집권세력은 꽤 놀란 듯하다.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이 파기 결정 다음 날 브리핑을 자처하며 미국과의 소통을 강조한 게 그렇다.
어떻게 이런 인식 차가, 그것도 동맹 간에 드러난 것일까. 필자는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 결정 전 미국과 관련해 핵심적인 사실 두 가지를 간과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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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엇보다 미국은 평소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가도 안보 이슈에는 이상할 정도로 뭉친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누구나 제 나라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하겠지만,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국과 혈전을 치른 ‘전쟁 국가’ 미국은 그 차원이 다르다.
미 언론은 요즘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도 쏘면 ‘미국 땅에 닿을 수 있다’면서 영토(territory)라는 국제법 개념보단 흙(soil)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어렵게 일군 내 나라 흙 한 줌도 내줄 수 없다는 뉘앙스다. 애국자(Patriot)라는 표현이 정권을 막론하고 요즘도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게 미국이다. 미사일 요격체계(패트리엇 미사일), 미식축구팀(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은 물론 테러방지법 이름도 애국법(Patriot Act)이다. 태극기가 특정 정치세력의 아이콘이 되고 일각에선 이를 비하하는 한국에서, 애국자라는 표현을 이리 사용했다면 ‘국뽕’ 논란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끊이지 않는 질문 중 하나는 과연 정부에 미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냐는 것이었다. 외교부 내 ‘워싱턴 스쿨’의 씨가 마르고 ‘코드 인사’를 집중 배치하면서다. 지금은 어떤가.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식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여럿 있다. 하지만 외교 상대로서 미국의 본질을 파악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동맹이 밑동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번 결정을 주도한 외교안보라인, 특히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람들은 영어 좀 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겸허하게 워싱턴과 소통에 나서야 한다. 안 그러면 70년 한미동맹의 역사에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