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체제 6개월 야당 의제 실종… 독자적 의제 설정으로 정국 주도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국가부채 논쟁은 일회성 정치 공방에 그치지 않고, 총선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야당이 의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여당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끼어들면서 판이 커져버린 것이다. 당시 여권은 총선 패인의 하나로 야당이 제기한 국가부채 논쟁에 미숙하게 대응한 점을 꼽았다. 야당이 주도하는 정치적 의제 설정의 역동성을 보여준 사례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체제가 2월 27일 출범한 지 6개월을 맞는다. 그 기간에 국가부채 논쟁처럼 국민의 뇌리에 기억될 만한 한국당의 이슈가 뭔지 모르겠다. 주요 당직자들이 매일 아침 순서를 기다려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마디씩 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다 지나간 것 같다. 이러니 제1야당이 정부 여당 정책을 비난하는 코멘트만 하는 ‘반응 정당’이라는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됐다. 대통령 탄핵의 직격탄을 맞고, 적폐청산의 후폭풍으로 지지 기반이 거의 와해된 현실을 외면한 듯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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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체제 6개월간 한국당은 정부 여당이 짜놓은 이슈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여권의 이 같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야당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황교안 체제가 초기엔 대정부 투쟁으로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최근 들어 지지율 정체 현상을 보이는 이유다. 결국 야당은 자신만의 의제와 이슈로 만든 ‘링’ 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 정부 여당이 던진 의제나 이슈만 쫓아다니는 ‘반응 정당’의 한계는 뻔하다.
지금은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어 나갈 때다. 목소리 높이고 막말 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심금을 파고드는 정책이나 의제를 개발해서 집요하게 이슈화하는 것이 야당성 회복의 첫걸음이다. 그래야 야당의 정치적 자산이 된다.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도 분명해야 한다. 여권이 지속적으로 ‘평화’ 키워드를 고수하듯이 한국당은 자유우파의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설익고 내용도 없는 보수통합 구호를 선창할 때가 아니라 자강(自强)이 우선이다.
황교안 대표는 이전과 전혀 다른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장외로 나가든, 원내에서 하든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열쇠는 한국당이 과연 자신만의 의제나 이슈를 만들어 내면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느냐다. 하지만 당내에선 4·15총선 승리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이 여전히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적당히 버티기만 하면 문재인 정부 실정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다는 한심한 생각이다. 한국당은 덩치만 크고 변화에 둔감한 과거 공룡정당의 타성부터 깨야 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