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2차 경제보복] 아베 외조부의 동생인 사토 前총리… 1974년 14대 심수관 찾아가 “우리 가문도 조선서 건너온 집안”… 붓-벼루 청해 즉석 휘호 선물도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가 심수관에게 써 준 휘호. ‘묵이식지(默而識之)’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동아일보DB
심수관가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온 심당길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규슈(九州) 미야마(美山)에 자리를 잡고 대대손손 도자기를 빚었다. 메이지유신 때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자손들이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유명 작가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1969년)에서 이런 심수관가의 모습을 그려냈다.
올해 6월 말 문 대통령 내외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15대 심수관으로부터 백자로 된 ‘사쓰마 난화도’ 접시를 선물받았다. 앞서 2004년 12월 일본 규슈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노 전 대통령 내외는 회담 후 심수관가를 직접 찾기도 했다.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사토 전 총리)
“400년 가까이 됐습니다.”(심수관)
“우리 가문은 그 후에 건너온 집안입니다.”(사토 전 총리)
심수관은 사토 전 총리가 조선의 어느 고장에서 언제 왔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의 선조가 조선에서 건너왔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사토 전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는 조선시대에도 활발하게 교류를 했던 지역이다.
사토 전 총리는 당시 심수관에게 붓과 벼루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곤 즉석에서 휘호를 썼다. ‘묵이식지(默而識之)’라는 글씨 곁에 ‘심수관 선생에게, 갑인년(1974년) 봄 에이사쿠’라는 서명까지 남겼다. 묵이식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 도자기와 인간의 대화, 예술품과 보는 이의 말이 통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조선에서 건너왔다는 점이 통했다는 의미까지도 담겼을까. 심수관은 30년이 넘도록 거실에 그 휘호를 걸어놓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