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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팬 두 번 우롱한 호날두[현장에서/이원주]

입력 | 2019-07-29 03:00:00


26일 팀 K리그 경기에서 팔짱끼고 벤치에 앉아 있는 호날두.

이원주 스포츠부 기자

이탈리아 세리에A 유벤투스와 K리그 올스타의 평가전이 열린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경기가 끝난 뒤 단 1초도 뛰지 않은 유벤투스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눈을 부라리고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빠져나갔다. 왜 귀찮게 하냐며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한국 팬 6만3000여 명은 비가 오는 가운데 경기장을 찾았다. 티켓 최고가가 40만 원이나 했지만 발매 시작 2시간 30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이날 경기는 관심사였다. 바로 세계적인 축구스타 호날두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를 추진한 더페스타가 유벤투스와 계약하며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을 조항에 포함시킨 이유도 팬들의 호날두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날두가 이날 보여준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호날두는 그라운드에 나오는 건 고사하고 축구 경기에 나설 때 해서는 안 되는 귀걸이를 빼지도 않은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처음부터 뛸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놓고 호날두는 경기에 앞서 열렸던 팬미팅에서 “경기력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행사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호날두의 행동에 대한 유벤투스의 반응도 가관이었다. 더페스타 관계자에 따르면 후반 10분이 지난 시점이 돼서야 호날두가 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돼 항의하자 유벤투스 측은 ‘감독도 선수도 출전 조항을 알고 있지만 선수가 뛰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호날두에게 주급 7억 원이 넘게 주는 명문 구단이 선수가 뛰지 않겠다고 해서 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변명이라고 했다.

유벤투스는 한국 땅을 밟기 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한국 팬들을 대놓고 기만했다. 당일 입국, 당일 출국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정에 빡빡한 팬미팅 스케줄 등은 모두 유벤투스의 요청으로 짜였다. 그래놓고 유벤투스는 입국 후 교통 정체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자 “우리가 왔는데 한국 경찰은 호위도 안 해 주냐”며 되레 역정을 내기도 했다.

이날 대구에서 올라온 김효순 씨(51)는 “호날두가 팬미팅에 나온다고 해서 새벽기차로 올라왔는데 사기당한 기분입니다. 경기 안 보고 그냥 내려갈랍니다”라고 했다. 이날 인터넷에는 호날두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한 다양한 사연이 올라왔다. 몇 년째 투병 중인 동생을 위해 일부러 비싼 돈 주고 아픈 동생을 지방에서 서울까지 데려왔다는 사연, 축구 선수가 꿈인 딸을 위해 없는 돈에 티켓을 마련했다는 사연…. 이들의 조그만 희망은 이날 산산이 부서졌다.

호날두는 이탈리아로 돌아가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집에 와서 좋다’며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달리는 사진을 올렸다. 호날두는 한국 축구팬을 두 번이나 우롱했다.

이원주 스포츠부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