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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뺏길까봐… 맞아도 참고 사는 이주여성들

입력 | 2019-07-12 03:00:00

법원, 양육권심사때 경제력 중요시
이주여성 42% “매 맞은적 있다”… 상당수는 “아이 때문에 혼인 유지”
“맞는 엄마 보는것도 아동 학대… 폭력 남편에 양육권 주면 안돼” 지적




2000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A 씨(41)의 지난 19년은 지옥과 같았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A 씨에게 손찌검을 했다. 두 딸이 옆에서 지켜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A 씨는 남편의 폭음을 말리다가 남편이 던진 소주잔에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그런데도 A 씨가 남편과 갈라서지 못한 이유는 두 딸의 양육권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A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결혼 이주여성들이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요구했다가 양육권 소송에서 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법원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아내를 폭행한 남편에게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아이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면 양육권은 그래도 경제력이 있는 쪽이 가져야 한다’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A 씨는 지난해 11월 남편이 자신의 목을 조르며 성폭행하려는 것을 본 큰딸(18)의 신고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 씨는 뒤늦게 찾은 보호시설에서 “두 딸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참고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혼소송을 하면 양육권을 뺏길까봐 남편의 폭력을 참고 사는 결혼 이주여성은 A 씨만이 아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 이주여성 920명을 조사해보니 42.1%는 가정 폭력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혼인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자녀에게 피해를 줄 것이 걱정돼서’라는 응답이 52.8%(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자녀를 양육하지 못할까봐 걱정됐다’(25%)는 대답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를 잘 아는 폭력 남편들은 양육권을 협박 수단으로 쓴다. 베트남 출신 B 씨(28·여)는 결혼 후 5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력을 피해 2015년 8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가 “애 데리고 도망간 베트남 아내들은 혼자만 쫓겨난다”는 남편의 협박에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B 씨는 그 뒤로 1년간 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다시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는데, 법원은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다.

이주여성들 사이에선 “아이와 함께 살고 싶으면 참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 조언처럼 나돌 정도다. 30대 이주여성 C 씨는 7년 동안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과 시어머니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2017년 9월 보호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C 씨는 이곳의 이주여성들이 그간 남편의 폭력을 피하려다 아이를 잃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하루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베트남 출신 D 씨(27·여)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출했는데도 양육권을 잃었다. D 씨는 2016년 남편이 자신을 폭행하며 울고 있는 4세 아들을 향해서도 “너도 네 엄마랑 똑같다”며 고함을 치자 다음 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이후 D 씨는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2017년 말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다. D 씨는 ‘경제력’을 입증하기 위해 현재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와 함께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아동학대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 앞에서 엄마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데, 아이를 직접 폭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양육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엄마가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동폭력에 해당된다”며 “아이가 자랄 정서적인 환경도 양육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