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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떤 위험 앞에 서 있나

입력 | 2019-06-29 03:00:00

◇붕괴/애덤 투즈 지음·우진하 옮김/964쪽·3만8000원·아카넷




2008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신용으로 촘촘히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 경제가 위기에 터무니없이 취약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동아일보DB

2001년 9월 11일. 여객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화염과 함께 빨려 들어가는 순간, 세계는 21세기가 이 사건과 함께 규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급한 판단이었다. 진정한 20세기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뒤흔든 암살자의 총성으로 시작된 것처럼, 진짜 21세기는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날 시작됐다. 이 사건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규정하고 있다.

“대공황은 히틀러를 낳았고, 금융위기 10년은 트럼프를 낳았다”라는 이 책의 선전문구는 맞다. 트럼프뿐 아니라 브렉시트를 비롯한 시대의 모습이 이 사건으로 만들어졌다. 앞으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난 세기의 대공황과 나치독일 경제의 전문가였던 저자에게 오늘의 세계는 한 세기 전과 ‘평행이론’적 성격을 갖는다. 단순한 역사의 반복이라면 대처하기가 오히려 쉬울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다양한 요소가 서로 의존하는, 훨씬 복잡해진 세계다.

2008년 금융위기와 그 파장을 분석한 ‘백서’격의 책은 여럿 나왔다. 이 책 역시 금융위기의 전사(前史)에서부터 글로벌적인 영향과 이후의 대응방식을 거시적·미시적 관점에서 조감한다. 그런 만큼 이 책이 강조하는 초점도 명확하다. 세계 각 지역 간의 의존성, 경제와 정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사회적 구성 요인들의 상호 영향 및 그로 인해 높아지는 예측불가능성에 저자는 확대경을 들이댄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촉발한 위기의 진앙은 미국이었지만 훨씬 많은 충격이 가해진 곳은 남부 유럽이었다. 미국의 고위험 모기지 증권 상당 부분을 유럽 대형 금융기관들이 떠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크게 흔들린 유럽에서 정치가들은 위기를 유예하면서 대중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금욕적’ 처방에 이끌렸고, 그 결과 극우 정당들이 약진했다.

트럼프의 등장도 이런 배경과 궤를 같이한다. 2009년 트럼프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오바마 대통령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골치 아픈 문제를 물려받아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6년 뒤에도 ‘강력한’ 대통령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후한 평가가 적대감으로 바뀐 점이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가장 큰 위기에 놓인 국가였다. 금융 시스템이 고도로 국제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것은 국면의 전환점이 됐으며, 한국은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베스트 프랙티스’ 그룹에 속한 것으로 저자는 평가한다. 그럼에도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앞날에 우려를 잊지 않는다.

“더 변덕스러운 미국, 부상하는 중국, 공격적인 러시아… 이런 와중에 한국은 극명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냉전의 종식은 유럽에 유럽연합이라는 기본적인 구조물을 남겼지만 동아시아에는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구조물이 세워지지 않았다. 이 책을, 정치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세계화의 물결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로 읽어 주기 바란다.”

경제위기가 글로벌 차원의 대(大)충돌을 낳았던 20세기는 반복될 것인가. 저자가 확실한 답을 내놓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순투성이 금융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고, 미국 중심의 1극체제는 ‘헤게모니 없는 세계지배’로 재편되고 있다. 이 책은 푸른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자와 군인들이 내리는 판단과, ‘공포의 균형’에만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