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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센터 잔해로 만든 배… “어떤 테러에도 굴복 안해”

입력 | 2019-06-20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강습상륙함 USS뉴욕에 오르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피어88에 정박한 강습상륙함 USS뉴욕 위에 AH-1Z 바이퍼 공격용 헬기(왼쪽)와 MV-22 오스프리 다목적 헬기가 마주 보고 서 있다. 군인 4명과 민간인 2명이 이를 둘러보고 있다. 대테러 작전 등에 투입되는 이 배는 길이 208m, 만재 배수량 2만5000t의 위용을 자랑한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박용 뉴욕 특파원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피어88.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부두로 나가자 선체 길이 208m, 만재 배수량 2만5000t의 강습상륙수송함(LPD-21) USS뉴욕이 위용을 드러냈다. 대테러 작전 등 기습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USS뉴욕은 이날 뉴욕항에서 시작된 ‘플리트 위크(Fleet Week)’에 참가하기 위해 15척의 함정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허드슨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이날 미 국무부 외신기자센터의 도움으로 함정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선착장에서 계단을 올라 함선 내부로 들어간 뒤 비행갑판으로 향했다. 맨해튼의 고층빌딩 숲을 배경으로 갑판 위에는 ‘M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 다목적 수송기와 해상작전용 공격용 헬기인 ‘AH-1Z 바이퍼’가 1대씩 배치돼 있었다. 특수전 요원이나 해병대 병력을 적진 깊숙이 투입시키고 이를 엄호하는 핵심 항공 전력이다. 브렌트 드보어 USS뉴욕 함장은 “함정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주 임무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해병대를 세계 어디든 필요한 곳에 투입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레이더에 소형 어선으로 보이는 스텔스함

샌안토니오급(LPD-17) 상륙수송함의 5번째 함정인 USS뉴욕에는 승조원 360여 명이 근무하며 해병대 병력 700명과 수륙양용 장갑차 14대 등 전투 장비를 적진에 은밀하고 신속하게 침투시킬 수 있다. 선체가 200m 이상인 대형 함정이지만 레이더에는 작은 어선처럼 보이도록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장비가 빼곡한 오스프리에 올랐더니 특수전 요원 20여 명을 수송할 수 있는 2열 좌석 25개가 보였다. 동체 후면과 옆면 모두에 출입구가 있었다. 이 항공기는 헬기처럼 수직이착륙을 할 수 있고 비행 중에는 터보프롭 항공기처럼 최고 시속 532km로 신속하게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다.

5년 차 여성 오스프리 조종사인 버지니아 커틀러 대위는 “활주로가 없는 곳에서 다양한 작전을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항공기”라며 “지난해 한국 동해안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해 한국의 독도함과 작전을 펼쳤다. 한국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35노트 고속 공기부양정으로 적진 침투

USS뉴욕 비행갑판 밑으로 내려가자 수륙양용 장갑차와 대형 공기부양정을 바다에 곧바로 투입시킬 수 있는 대형 ‘독(dock)’이 나타났다. 독 뒤편에는 상륙작전용 공기부양정이 탑재돼 있었다. 공기 부양정의 장점은 ‘속도’다. 35노트의 빠른 속도로 장갑차, 다목적 전술차량인 험비 등의 전투 장비를 싣고 해안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존 상륙정보다 5배 빠른 속도에 해당한다.

하늘과 바다에서 은밀하게 테러리스트들의 기지나 적진에 침투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함정이다. 지난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USS그린베이는 USS뉴욕과 같은 샌안토니오급 쌍둥이 함정이다. USS뉴욕 승조원들과 해병들은 이날 수륙양용 장갑차와 박격포 등 전투 장비 등을 함께 공개했다.

○ 선체 1000분의 1은 세계무역센터 잔해

“우리는 약해지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평화와 자유는 승리할 것이다.”(조지 W 부시·43대 대통령)

“사소한 서비스나 단순한 친절의 행동조차도 (9·11테러) 희생자들을 기리고 9·11 이후 통합의 정신을 회복하는 길이다.”(버락 오바마 44대 대통령)

USS뉴욕의 독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담긴 구호와 대형 얼굴 그림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009년 취역한 USS뉴욕은 2001년 9·11테러로 건조가 시작됐다. 2001년 조지 퍼타키 당시 뉴욕주지사는 뉴욕 시민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테러와 전쟁’에 투입되는 신형 함정에 ‘뉴욕’을 새겨달라고 요청했다. 미 해군은 잠수함에 주(州) 이름을 쓰는 관행을 깨고 이를 받아들였다.

파도를 헤치고 물살을 가르는 USS뉴욕의 선수 부분은 특별하다. 2001년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 맨해튼 110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잔해에서 수거한 철강 7.5t을 녹여 선수 부분을 만들었다. ‘어떤 테러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의도다. USS뉴욕에 이어 9·11테러 당시 항공기가 추락한 버지니아주 알링턴 펜타곤과 서머싯의 이름을 딴 샌안토니오급 상륙수송함 USS알링턴과 USS서머싯도 건조됐다.

○ “힘은 희생으로 다져진다”

USS뉴욕은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최악의 허리케인으로 평가받는 카트리나로 조선소 일부 시설이 파괴되고 근로자들의 집이 침수됐다. 건조 작업도 상당 기간 지연됐다.

USS뉴욕 승조원들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겪은 최대 재난 2건, 즉 ‘9·11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모두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안고 있다. USS뉴욕에서 근무하는 뉴욕 출신의 네메시스 노엘 해병대 병장은 기자에게 “모든 승조원들이 9·11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승조원들은 매일 저녁 선상에서 희생자들의 기리는 묵념을 한다. USS뉴욕의 모토는 “힘은 희생을 통해 다져진다. 잊지 말라”는 구호다. 로고에는 9·11테러로 붕괴된 ‘쌍둥이 빌딩’ 형상물과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지난달 28일 행사를 마치고 뉴욕항을 떠난 USS뉴욕 승조원들은 당시 비행갑판에 모여 ‘I love New York’이라는 대형을 만들어 뉴욕 시민들에 대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USS뉴욕 취재를 마치고 부두를 나왔을 때 지나가는 시민 2명이 걸음을 멈추고 해군 장병들에게 다가왔다. 시민들은 “군 복무를 해줘서 감사하다”며 장병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장병들도 시민들의 손을 힘차게 마주 잡았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압도적 힘을 만들어낸 건 비단 군사력과 첨단 장비만은 아님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