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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나눔을 낳고… 희망씨앗 뿌린 기부왕

입력 | 2019-06-19 03:00:00

高大에 9년간 54억 쾌척 유휘성씨
생활비 장학금 매달 받던 졸업생들 취직후 학교에 다시 기부 ‘선순환’
“자신에 후하면 남에게 못 베풀어”




유휘성 씨가 1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수당삼양 패컬티하우스에서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 조형물을 가리키고 있다. 유 씨는 이날 고려대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자기한테 후하게 굴면 남한테 베푸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18일 고려대에 10억 원을 기부한 유휘성 씨(81)는 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발전기금 기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서부터 30분가량을 걸어왔다. 유 씨는 2011년과 2015년 각각 10억 원을 모교에 쾌척한 데 이어 2017년에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아파트(당시 매매가 24억 원)를 기증했다. 지금까지 유 씨가 고려대에 기부한 금액은 54억 원에 달한다.

1958년 고려대 상학과(현 경영학과)에 입학한 유 씨는 1970년 조흥건설을 창업해 대표로 지내다 2008년경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기부식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유 씨는 “은퇴한 지 10년이 지나 돈을 버는 게 아니다 보니 내가 돈을 안 써야 학생들에게 줄 돈이 생긴다”며 “나는 차도 없고 택시도 잘 안 탄다. 주로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유 씨는 성북구 월곡동에 있는 79m²(약 24평)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유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유 씨는 “6·25전쟁 때 피란을 떠나 피란지의 빈집 메주를 훔쳐 가족들에게 갖다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장날이면 좌판에 담배와 성냥을 늘어놓고 팔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어렵게 대학에 입학한 뒤 친구집 등을 전전했다. 생활비는 과외나 번역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하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했다.

유 씨에겐 2남 1녀의 자녀가 있다. 유 씨는 “돈은 짠 바닷물과 같아서 아무리 많이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돈은 뜻깊은 곳에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신념을 자녀들에게 자주 전했다고 한다.

그동안 유 씨의 기부금은 고려대 학생들의 장학금과 신경영관 건립에 쓰였다. 유 씨가 2017년 기부한 아파트는 매각을 거쳐 ‘인성기금’으로 조성됐다. ‘인성기금’은 유 씨와 어머니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지었다. 이 기금은 학생들 장학금과 연구지원금으로 쓰이고 있다.

유 씨의 기부는 ‘나눔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학 중 매달 7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던 고려대 졸업생 임모 씨(25)는 취업 후 매달 일정 금액을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임 씨는 “취업 준비에 학교 공부까지 하느라 바빴던 4학년 때 장학금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