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들어오고 무대 위에 출근길이 펼쳐진다. 일곱 배우가 전쟁 같은 전철역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모두 자기 이야기로 느끼기 때문이다. 극단 작은 신화가 무대에 올린 연극 ‘돌아오는 화(火), 요일(원작·연출 이흥근)’을 관람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경쟁하느라 지쳐버린 직장인들은 회의에서 ‘만만한’ 직원을 비꼬며 상처를 준다. 회의가 끝나자 공격받은 직원은 또 다른 만만한 직원에게 화풀이를 한다. 이 연극의 기본 구조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낸 분노(火)가 어떻게 릴레이 바통을 주고받듯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고 불이 번지듯 퍼지며, 결국 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회사에서 상처 받은 직원은 커피집 아르바이트생에게 화풀이를 하고, 세차장 사장과 주차 문제를 놓고 싸우고, 저녁에 모처럼 만난 연인에게 화를 내며 날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나를 아프게 했던 말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던진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이전 장면에서 화를 냈던 배우는 무대 한 켠에서 자신이 낸 화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화를 내는지 관찰한다. 집에 오는 길, 직장인의 분노와 갈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조직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다보면 내부의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조직 컨설턴트로 유명한 패트릭 렌시오니는 “리더는 조직 내부의 갈등을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다양한 의견이 두려움 없이 나올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조직문화의 건강도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카카오는 ‘신충헌’이라는 문화를 갖고 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신뢰가 있는 바탕에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며, 그렇게 만들어진 결론에는 모두가 헌신한다는 뜻이다.
둘째, 분노가 을(乙)에게만 향하고 갑(甲)의 부당한 행동에는 향하지 않을 때다. 연극에서 분노는 모두 만만한 상대, 즉 갑에서 을로 향한다. 을이 갑의 부당한 행동에 저항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상사가 옳지 않은 지시를 할 때 “저는 의견이 다릅니다”라고 반박을 시도하는가, 아니면 해봐야 소용없다거나 겁을 먹고 알아서 기는 태도를 취하는가. 나 역시 정작 갑에게는 제대로 따져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