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별세] ‘구사일생’ 남편에 “더 강한 투쟁” 주문 …때마다 ‘버팀목’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행동하는 양심’ 정치적 신념 지켜줘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이 여사는 지난 10일 9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9.6.11/뉴스1 © News1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향년97세)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하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새정치연합 전북도당 제공) 2019.6.10/뉴스1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이자 영원한 동반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향년97세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병세가 악화돼 오후 11시37분 끝내 눈을 감았다. 사진은 2016년 9월 7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여사. (뉴스1 DB)2019.6.10/뉴스1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이기 전에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긴 고난의 세월을 지나온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조언자’였다. 또 ‘1세대 여성운동가’로 여성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한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이 여사가 남긴 어록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굴곡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한 정신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여사가 남긴 말이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이 여사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돼 기도로 밤을 새우면서도, 독재자와 싸우기를 중단하라거나 민주주의 투쟁을 포기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의 투쟁을 지원하고 독려했다.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 여사는 이 여사는 일본에 머무르던 남편에게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편지로 독려했다.
1973년 이른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인생의 큰 시련이 왔다. 이때도 이 여사는 포기를 권하지 않았다.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이란 김 전 대통령이 도쿄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죽을 뻔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미국 정부에 배의 위치가 알려져 김대중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이 여사는 외신에 “우리의 남편들이 한 일은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이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당히 일하다가 고난을 받는 우리의 남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7년 징역 5년이 확정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이 여사는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며 옥바라지를 했다. 이 여사는 편지에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들은 당신의 고통스러운 생활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떳떳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에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역경은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고초를 겪는 상황에서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이 여사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평화와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 여사는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았을 땐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국민들에 전했다. 국장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잠시 멈춰선 동안 단상에 오른 김 여사는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 여사는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라고 당부했다.
이 여사는 ‘이희호 평전’을 통해 김 전 대통령과의 한평생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말 서로 인격을 존중했어요. 늦게 결혼했고 결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참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을 값있고 뜻있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