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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가깝고도 먼 사이, 가족이란 무엇인가

입력 | 2019-05-11 03:00:00

◇기분이 없는 기분/구정인 지음/204쪽·1만3000원·창비




“경찰서입니다. 아버님이 사망하셨어요. 3, 4주 된 것 같습니다.”

30대 혜진은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따로 살던 아버지가 ‘고독사’했다는 소식.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놀랄 만큼 기계적이다. 장례를 치러야 하나, 언니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나…. 그녀는 덤덤하다.

슬픔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태도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다.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다단계에 빠져들며 방황한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정불화의 원인이다. 신용불량자로 사업을 할 수 없으니 명의를 빌려 달란 말을 거절한 뒤로 아버지는 연락이 두절됐다. 그런 아버지가 쓸쓸히 사망했지만 혜진은 슬퍼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 ‘기분이 없는 기분’이 된다.

가부장제는 아버지에게 권위를 줬지만 동시에 책임마저 모두 그에게 돌렸다. 그 짐을 감당하지 못한 아버지와, 그의 실패를 원망하는 딸 모두가 피해자다. 사실은 아버지도 삶의 모든 순간이 처음이고, 실패를 극복해내지 못할 수 있는 인간인데. 아버지를 늘 가장으로만 상정하는 가부장제는 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받아들이기를 가로막는다.

급속도로 가치관이 변화한 한국 사회.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저자의 경험에 비춰 솔직하게 그린 만화다. 혜진은 상담을 통해 어렵사리 다정했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린다. 온갖 어려움에도 무엇이 가족을 지탱해주는 것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