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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남과 북은 ‘생명공동체’…이념 아닌 생존의 문제로 확장”

입력 | 2019-05-07 00:04:00

독일 유력 일간지 출간 예정 기고문집에 장문 기고
"일제강점·냉전 겪은 한국인들, 스스로 운명 개척"
"비핵화·북미수교 이뤄지면 새로운 평화체계 구축"
"신한반도 체제는 한반도 지정학적 대전환 의미"
"남북 화해하면 한국은 대륙·해양 잇는 관문 될 것"
"평범한 사람들의 자발적 행동, 신한반도 원동력"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新) 한반도 체제’는 수동적인 냉전 질서에서 능동적인 평화 질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 한국 국민은 일제 강점과 냉전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FAZ)이 5월 말 출간할 예정인 기고문집에 기고한 ‘평범함의 위대함(부제 : 새로운 세계질서를 생각하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신한반도체제는 문 대통령이 올해 3·1절 기념사를 통해 새로운 100년을 위한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아이디어다. 한미 공조와 북미 대화 타결,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기존 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동시에 동북아에 심어진 ‘냉전 구조’와 깊이 연관돼 있다”며 “전후 처리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의사와 다르게 분단이 결정됐고, 비극적 전쟁을 겪어야 했다. 이때 한미일의 남방 3각 구도와 이에 대응하는 북중러의 북방 3각 구도가 암묵적으로 자리잡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어 “이런 냉전구도는 1970년대 데탕트와 1990년대 구소련 해체,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으로 상당부분 해소됐지만, 아직 한반도에서만은 그대로”라며 “남북한은 분단돼 있고, 북한은 미국, 일본과 정상적 수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은 작년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 서로 간의 적대행위 종식을 선언함으로써 항구적 평화정착의 첫 번째 단추를 채웠다”며 “동시에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문제와 함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미 대화가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수교를 이뤄내고 한국전쟁 정전 협정이 평화 협정으로 완전히 대체된다면 비로소 냉전체계는 무너지고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계가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 체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대전환을 의미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단층선에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잦은 전쟁의 수난을 겪어왔다. 특히, 남한과 북한이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나눠진 이후 한국은 사실상 대륙과의 연결이 가로막힌 ‘섬과 같은 존재’였다.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섬과 대륙을 연결하는 연륙교를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반도의 평화가 남북으로 뻗어 나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유럽까지 번져나갈 것을 기대한다”며 “한반도 전역에 걸쳐 오랜 시간 고착된 냉전적 갈등과 분열, 다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해체돼 평화와 공존, 협력과 번영의 신질서로 대체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일은 한국의 국민들이 휴전선 그 너머를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 것이었다”며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화해하고, 철도를 깔고, 물류를 이동시키고, 사람을 오가게 한다면, 한국은 ‘섬’이 아닌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는 관문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이 넓어진다는 것은 곧 이념에서 해방된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국민들의 상상력도, 삶의 영역도, 생각의 범위도 훨씬 더 넓어져서 그동안 아프게 감내해야 했던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남북의 문제는 이념과 정치로 악용되어서는 안 되며, 평범한 국민의 생명과 생존의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며 “남과 북은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병충해가 발생하고 산불이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바다 위의 경계는 조업권을 위협하거나 예상치 못한 국경의 침범으로 어민들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며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바로 항구적 평화다.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평화를 넘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한 평화“라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평화는 또한 함께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기반이다. 신한반도 체제는 평화경제를 의미한다“며 ”남과 북은 항구적 평화정착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고심하고 있다. 이미 끊어진 철도와 도로 연결에 착수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남북 경제 교류 활성화는 주변국과 연계해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유라시아의 경제회랑으로 거듭날 수 있다“며 ”남북한과 러시아는 가스관을 잇는 사업에 대해 실무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8월에는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모델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동북아시아의 에너지공동체,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며 ”나아가 이 공동체는 다자평화안보체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분단은 개인의 삶과 생각을 반목으로 길들였다. 분단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매장하는 방법으로, 특권과 반칙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이용됐다. 평범한 사람들은 분단이라는 ’난세‘ 동안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사상과 표현,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았다. 자기검열을 당연시했고 부조리에 익숙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오래되고 모순된 상황을 바꿔보고자 하는 열망은 한국인들이 촛불을 든 이유 중 하나였다. 민주주의를 지켜냄으로써 평화를 불러오고자 했다. 촛불이 평화로 가는 길을 밝히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직도 평화를 향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촛불혁명의 영웅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 힘이었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국민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런 힘은 마지막 남은 ’냉전체계‘를 무너뜨리고,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평범한 한 사람이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행에 빠지는 일을 막는 일“이라며 ”평화를 이루는 것도 결국 평범한 국민들의 의지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게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