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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맥시장에 불어닥친 ‘주세’ 논란 [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19-05-03 03:00:00

‘종가세 → 종량세’ 주세법 개정 추진
맥주 세금 매기는 출고가 -신고가… 국산이 수입산 2배 넘어 경쟁 안돼
국산-수제맥주 역차별 시정나서… 소주는 도수 따라 부과땐 세금 올라
업계 “위스키와 경쟁할 판” 반발거세… 맥주부터 시행 후 확대 가능성도




송충현 기자

‘테슬라’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최근 대학가에서 이 단어는 전기자동차 브랜드나 비운의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가 아닌 ‘소맥’(소주+맥주 칵테일)의 한 종류로 더 자주 불린다. 국산맥주 ‘테라’와 ‘참이슬’을 섞어 만든 신종 폭탄주다.

중장년들이 식당에서 소맥을 시키며 “사장님 여기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을 외칠 때 대학생들은 캠퍼스 주변 식당과 주점에서 “테슬라 주세요”라고 한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주종은 ‘소맥’임이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주세법 개정을 준비하면서 소주와 맥주 가격도 큰 영향을 받게 됐다. 국산맥주 값은 내려가는 반면 소주 값이 오르면서 소맥 비율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 소맥 시장에 불어닥친 태풍

소맥의 ‘재료’인 소주와 맥주를 만드는 주류업계에서는 주세법 개정이 뜨거운 이슈다.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할 주세법 개정안의 내용에 따라 소주와 맥주업계의 희비가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술을 즐기는 주당이라고 해도 주세법 체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주세법 개정은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가격’과 직결돼 있다. 세금이 달라지면 당연히 소비자가격도 변하므로 관련 업계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주세법 개정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루의 시름을 달래주는 약으로, 우정과 사랑에 칠하는 윤활유로 마셨던 소맥의 가격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주세법 개정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지난해 7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맥주 과세체계 개선 공청회’를 열면서부터다. 당시 공청회에서는 현재의 과세 체계로는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공정한 경쟁이 어려우니 주세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 암호문 같은 주세


주세법을 알기 위해선 ‘종가세(從價稅)’와 ‘종량세(從量稅)’의 개념부터 짚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술은 종가세로 세금이 붙는다. 물건의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술의 원가가 1000원이고 세율이 30%라면 이 술에는 300원의 세금이 붙는다. 반면 종량세 방식이라면 술의 양이나 도수에 따라 세금을 물린다.

우리나라는 1949년 주세를 처음 만들 때 종량세 방식으로 주세를 과세하다가 1968년부터 종가세로 전환됐다. 비싼 술에는 세금을 많이 물리고 싼 술에는 세금을 적게 물려 세 부담의 형평성을 꾀하겠다는 목적에서다. 한국 칠레 멕시코 등 5개 나라만 종가세 방식이고,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대체로 종량세 방식이다.

다음은 세율. 맥주와 소주의 경우 세율은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합해 112.96%로 같다. 출고가와 세금을 더해 소비자가격이 만들어지니 소맥 한 잔을 마실 때 절반 정도는 국고에 기여하는 셈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이 국산맥주와 수입맥주를 비교하며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는 국산맥주와 수입맥주의 과세표준(세금 부과 기준 금액)이 달라서다. 국산맥주는 원가에 이윤을 붙인 출고가를 과표로 보고, 수입되는 맥주는 관세청에 신고하는 가격을 과표로 본다.

이 때문에 국내 주류업계에서는 수입업체들이 일부러 신고가를 낮춰 세 부담을 줄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업계는 수입맥주의 신고가를 500mL당 500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산맥주의 출고가는 500mL당 1100원 정도다. 신고가와 출고가에 세금을 매긴 판매가격은 수입맥주가 상대적으로 싸질 수밖에 없다. 수입맥주 네 캔에 1만 원이 가능한 이유다.

○ 국내 업계 역차별 시정되나


그러니 소비자들은 수입맥주 쪽으로 기울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0년 502만 달러였던 맥주 수입액은 지난해 처음 3억 달러를 넘어섰다.

반면 국산맥주 출고량은 2014년 206만 kL에서 2017년 182만 kL로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주세법 개정을 통해 침체된 국내 주류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제맥주, 고급소주 등 새롭게 떠오른 주류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 발표할 주세법 개편안의 핵심은 맥주는 양에 따라 종량세를 매기고, 소주 등 증류주는 도수에 따라 종량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1L당 835원의 종량세를 도입하면 캔맥주 500mL 기준 국산맥주는 363원가량 싸진다. 반면 수입맥주는 89원가량 오른다. 국산맥주는 싸지고 수입맥주 값도 크게 오르지 않을 수 있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대형마트 등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5000원대에 판매돼 온 수제맥주의 가격은 1000원가량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출고가격이 저렴했던 생맥주는 소폭이지만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 유탄 맞은 소주업계 반발

복병은 소맥의 뇌관인 소주. 기획재정부는 당초 지난달 말 전 주종에 종량세를 적용하는 내용의 주세법 개정안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소주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며 난관에 부닥쳤다. 정부 당국자의 말이다. “소주업체들은 그간 가격이 비싸 세금을 많이 물던 위스키 가격이 떨어지면 소주와 경쟁이 심해진다며 반발합니다. 소주랑 위스키는 경쟁 구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업계 생각은 다르더라고요.”

주류업계 관계자는 “종량세가 처음 이슈가 된 게 국산맥주와 수입맥주의 형평성 때문인데 왜 잘 지내고 있던 소주까지 건드는지 모르겠다”며 “소주는 위스키, 과일향 소주는 와인과 경쟁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동일한 상품에 각기 다른 세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만 업계의 민원을 고려해 올해 맥주부터 우선 종량세를 시행한 뒤 추후 소주 등 다른 주종에도 적용하는 안을 고민하고 있다.

○ “주세 바꾸면 일자리 늘 것”

정부가 주세법 개정에 나서는 궁극적인 이유는 술 산업이 육성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제맥주협회는 2022년까지 약 4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한다.

만약 종량세가 맥주 외에 소주 등 증류주 시장에도 적용된다면 비싼 가격 탓에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고급소주도 일본의 사케 시장처럼 고급화, 다양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업계의 반발’에 밀려 주춤대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일 피지에서 열리는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종량세를 이번에 꼭 해야 하는지도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모호한 홍남기식 답변이다.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정부가 무결점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다는 인상을 받는다. 가령 많이 먹고도 살 안 찌는,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역설과 같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세법만 해도 정부는 서민 부담을 줄이고, 기존 업계는 다치지 않고, 세수는 유지한 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불가능한 과제 사이에서 헤매다 보니 정책의 ‘적기’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성빈 수제맥주협회장은 “지금도 국내에서 사업을 접고 해외로 나가는 수제맥줏집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가 서둘러 정책을 발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경제에 필요한 과제가 있다면 정부가 강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는 강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자리에 목마른 건 정부만이 아니다. 때론 과감한 ‘원샷’이 필요할 때도 있다.

에필로그 일부 주당 중에는 도수에 따라 소주 세금이 달라지면 가뜩이나 순해지는 추세인 소주가 더 ‘밍밍’해질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소주 도수가 조정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소주업계 관계자는 “소주 도수를 낮추려면 단순히 물만 타는 게 아니라 소주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첨가물 등 새로운 레시피가 필요해 보통 작업이 아니다”며 “당장 도수를 낮추진 않으니 소주파들은 걱정을 놓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