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아파트 ‘묻지마 살인’]보건당국-수사기관 정보공유 ‘구멍’
안인득 “불이익 당해 홧김에…” 경남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 씨가 18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안 씨는 경찰 조사에서 퇴사 및 치료 과정 등에서 불이익을 당해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주=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결국 “너무 무섭다”며 경찰에 5차례나 신고했던 안 씨의 윗집 주민 강모 씨(54·여)는 안 씨가 휘두른 흉기에 중상을 입었다. 강 씨의 조카 최모 씨(19)는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안 씨의 정신병력을 확인해 미리 조치를 취했다면 이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출동 경찰 정신병력 요청에 “공문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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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경찰이 출동 단계에서 피신고자의 정신병력을 파악하려고 해도 정신질환자 정보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게 문제다. 전국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센터) 243개가 있지만 조현병 환자나 보호자가 병력을 센터에 제공하지 않으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전체 정신질환자 가운데 센터에 등록된 비율은 19%(2017년 기준 추정치)에 불과하다.
또 센터에 피신고자의 정신병력이 있다고 해도 경찰은 쉽게 열람할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센터는 수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 경찰에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경찰이 정보를 요청하려면 공문을 센터에 보내야 해 촌각을 다투는 출동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또 열람을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센터가 기록을 제공할 의무가 없어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피신고자에게 전과가 있는 경우 경찰은 사건기록의 정신병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 출동이 잦은 파출소·지구대 경찰관들이 사건기록을 열람하려면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건 현장의 초동 조치 단계를 거친 뒤 피신고자가 입건돼 범죄 혐의가 인정될 경우 경찰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병원과 건강보험공단에서 정신병력을 확인할 수 있다.
○ “정신질환자와 피해자 인권 균형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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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병원에서 조현병 환자의 공격으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임세원법)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개정 법에도 수사기관의 정신병력 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내용은 없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들에 의해 위험에 놓인 시민들의 인권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보건당국과 수사기관 간의 정보공유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 eunji@donga.com·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