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장편 ‘민들레 왕조 연대기’ 1부… ‘제왕의 위엄’ 한국 출간 켄 리우
소설의 배경인 다라 제도의 가상 지도(왼쪽 사진). ‘자나’ ‘하안’ ‘파사’ ‘리마’ ‘아무’ ‘간’ ‘코크루’ 등 7개국이 각축전을 벌인다. 오른쪽 사진은 ‘제왕의 위엄’ 미국판 표지에 실린 투구. 아마존닷컴 홈페이지 캡처
켄 리우는 존 밀턴의 ‘실낙원’과 진융의 ‘소오강호’를 애독서로 꼽았다. ⓒLisa Tang Liu
초반에 소설은 초한지의 서사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후세의 영웅 쿠니와 마타의 성장담, 다라 제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뼈대를 이룬다. ‘지록위마’와 만리장성 쌓기 일화(해저터널로 변주)도 등장한다. 그는 “첫 장편에서 건국 신화의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야기로 사마천을 뛰어넘을 수 없겠지요. 설정의 변주보다는 다라 제국 건국 신화가 어떻게 재구성됐는지를 중심으로 읽으면 흥미진진할 겁니다.”
“경제학자 W 브라이언 아서의 ‘언어로서의 기술’ 개념에서 ‘실크펑크’를 떠올렸어요. 소설 속 기술 언어의 어휘는 대나무 산호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재료로, 문법은 ‘생체모방 기술’을 따르죠. 제가 만든 세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다가 감전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때로 SF의 외피를 입은 현실 은유로 읽힌다. 전쟁의 책임을 묻는 신에게 황제가 “더 많은 피가 흐르지 않도록 흘린 피였다”고 항변하거나, 분서갱유에 빗대 “세상은 아직 너무나 불완전했고, 위대한 인간이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라 설명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권력, 정의, 공정은 까마득히 오래된 문제다. 판타지는 현실에 기반한다. 사회를 비판하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설과 현실을 연관 짓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작가는 중국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미국에 건너갔다.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로펌 변호사를 거쳤다. 지금은 낮에는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그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라는 꼬리표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많은 이들이 그런 종류의 꼬리표에 분열과 갈등이 내포됐을 거라 여기는데, 저는 오히려 즐거워요. 다양한 전통을 섞어 나만의 문화 공간을 빚어낼 수 있으니까요. 가상의 놀이 공간을 창조하고 싶다는 충동이 저를 글쓰기로 이끕니다. 한국 독자들도 다라 제도에서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