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정치부장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기에 기자는 ‘플랜 B’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조만간 전임자가 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김정은의 서울 답방도 못 보고 물러나게 된 이유를 파악해보면 김 후보자가 발탁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며칠 알아보니 청와대 등 여권에서 조 장관에 대한 비토가 생각보다 거셌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해서 피로가 누적됐다’는 인사치레를 제외한 진짜 비토 이유는 대략 3가지였다.
첫째, 국제사회를 의식하느라 남북 경협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이 많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조 장관은 경협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비핵화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거의 유일한 레버리지가 남북 경협인데 주무 장관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 장관은 지난해 11월 방미 중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지금 상황에서는 남북 경협이 불가능하다”며 “미국의 제재(위반)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남북 경협도) 국제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지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 노무현 정부 당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실무 주역 중 한 명이라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자유한국당 인사들과도 대화가 잘된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정부 장관들 중 국회의원 출신을 제외하고선 조 장관과 비교적 이야기가 잘 통했다”고 했고, 또 다른 야당 중진은 “폭탄주도 종종 하는데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선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란 발언이 야당 의원들의 국회 질의 과정에서 공개된 배경 중 하나로 조 장관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권이 조 장관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나 아쉬운 점 3가지를 정리해보면 왜 김연철 후보자를 선택했는지 비교적 분명해진다. 야권과의 소통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미국과의 주파수 맞추기에 신경 쓰지 않고 남북문제에만 올인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을 겨냥한 ‘군복 입고 쇼나 하고 있다’ 같은 ‘불경스러운’ 막말에도 “저희로서는 (김 후보자가) 최선이었다”(이낙연 국무총리 19일 대정부질문)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개각에서 살아남은 외교안보부처 장관들은 이런 흐름을 눈치챈 듯 벌써부터 ‘김연철류’의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강경화 장관은 “남북미의 비핵화 개념이 같다”(21일)고 했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불미스러운 충돌”(20일)이라고 했다. 이러다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삽시간에 ‘김연철화(化)’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