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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정준영’ 널렸다…불법촬영 범죄 98%는 남자

입력 | 2019-03-23 10:39:00

정준영 성관계동영상·사진 메신저 대화방 공유
최근 5년간 불법촬영물 범죄 2832명→5437명
얼굴 아는 이로부터 당한 피해도 꾸준히 증가
정준영 범행, 과거 '단톡방 사건' 등 연장선상
"연예인의 문제라고 분리해 생각할 수 없어"
서로 촬영물 공유하면서 '남성성' 인정 문화
'문제있다' 목소리 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
전문가 "남성들 내부에서 움직임 시작돼야"




가수 정준영(30·구속)씨의 불법촬영물 유포 사건을 두고 비단 일부 연예인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씨의 범죄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성관계 동영상과 여성을 찍은 사진 등을 메신저의 개인 혹은 단체대화방에 공유했다. 대화방에 참가한 이들은 “올려봐라”고 독촉하고 웃음으로 답했다.

이같은 행각은 이미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카메라등이용촬영범죄 검거인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2832명이었던 불법촬영물 피의자는 5년간 꾸준히 증가해 2017년 5437명으로 집계됐다. 피의자 중 96~98%가 남성이고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다.

얼굴을 아는 이들(면식범)로부터 당하는 피해도 2013년 338명에서 꾸준히 늘어 2017년 939명으로 증가세다. 이중에서 ‘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4~48%에 이른다.

불법촬영물 피해는 실제 신고 건수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가 신고하기 꺼리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당사자가 피해를 알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씨 일당처럼 메신저를 통해 촬영물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내부자 외에는 피해사실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씨 일당의 범행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대학생들이 단체대화방에서 신입생이나 학교 동료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올려 논란이 됐던 과거 사건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김혜경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번 사건은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남성들이 가까운 관계의 여성을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지, 어떻게 성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유포하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일반 남성들이 아닌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킨 문제라고 굳이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불법촬영물 범죄는 남성들의 적극적인 동조 혹은 묵인 하에 이뤄진다. 불법촬영물을 찍고 공유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성’을 인정 받는 문화가 형성돼있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정씨의 단체대화방만 봐도 불법촬영물을 올리는 남성은 이를 자랑하고, 다른 남성들은 ‘세다’, ‘더 없냐’는 식으로 부추기거나 자신도 불법촬영물을 찍어 올린다”며 “불법촬영물을 ‘내가 얼마나 힘세고 거칠고 제대로 된 남성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증거물로 여겨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화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내부자’에서 ‘외부자’가 될 각오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박모(31)씨는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들끼리 함께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성관계 영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들의 사진이 올라올 때가 있다”며 “친한 사이인데도 대부분 웃거나 맞장구를 치는 분위기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 한마디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최모(25)씨도 “다른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혼자 정색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고 나만 소외되는 느낌도 들 것 같아서 불편하면 그냥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불법촬영물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넘어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성들 사이에서 불법촬영물은 범죄이며 남성성을 증명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많아지면 공고한 문화도 바뀐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이제는 ‘나까지 위험에 빠뜨리지마’, ‘공유하지마’라는 남성들 내부의 목소리가 절실하다”며 “잘못된 판을 깨뜨리고 이런 일은 범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