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출발을 한 시간 앞둔 오전 7시 무렵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참가자들이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가까운 나라에서 온 참가자뿐 아니라 미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장시간 비행을 거쳐 온 외국인 참가자들도 있었다. 히잡을 두른 여성 2명은 몸풀기 체조를 하면서 신기한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 해외에도 소문난 마라톤 코스
이날 아침 기온은 영상 2도로 쌀쌀했지만 참가자들은 다양한 복장을 뽐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복장을 한 일본인 산슈 쓰바키치 씨(48)는 “7년 째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번엔 마치 영웅이 돼 서울 도심을 누비는 느낌”이라며 밝게 웃었다.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남성도, 미키마우스 등 만화영화 주인공의 복장을 흉내 낸 참가자들도 많았다.
● 건강한 마라톤 모임에 빠진 20대
지난해 12월 결혼한 허지호 씨(29)와 정혜지 씨(27·여)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10km 코스를 출발했다. 직업 군인인 허 씨는 “평소 훈련량을 고려하면 완주하는 게 힘들지 않지만 오늘은 아내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며 “오늘 마라톤처럼 긴 인생 여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둘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달리기 동호회 ‘고고런’의 회원인 이주상 씨(26)는 “오늘 30여 명의 동호회 회원들과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대회에 참여했다”며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완주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 시각장애인도 ‘유모차 러너’도 함께 골인
시각장애 1급인 이용철 씨(60)는 이날 군인 박규남 씨(39)의 손을 붙잡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결승선 앞에 서자 박 씨가 이 씨에게 “거의 다왔다”고 귀띔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이 씨는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20년 전 시력을 잃고 안마사로 일 해온 이 씨는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2007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풀코스 완주 기록은 4시간 19분 44초. 이 씨는 “앞이 보이지 않아 마라톤을 하는 게 무섭지만 동반자분 덕분에 끝까지 완주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대회에서 풀코스를 완주했던 배종훈 씨(53)도 전동 휠체어에 아들 재국 씨(23)를 태우고 또다시 대회에 참가했다. 이들 부자는 4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하면서 28번째 완주를 기록했다. 재국 씨는 희귀난치병인 근육이완증을 앓고 있다. 배 씨는 “부상 때문에 마라톤을 뛰기 힘들지만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만둘 수가 없다”고 멋쩍게 웃었다.
동갑내기인 조대호 씨(42)와 김지연 씨(42·여) 부부는 유모차를 밀면서 10km 코스를 뛰었다. 네 살 배기 딸 남경 양이 타고 있었다. 조 씨는 “여러차례 유산의 아픔을 딛고 딸을 얻었다”며 “마라톤을 통해 딸과 ‘건강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들은 가족,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완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휴대전화 ‘셀프 카메라’로 찍거나 ‘1인 방송’을 하는 20, 30대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