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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독재 맞서 민주화운동 헌신 ‘떠돌이 목자’… 문동환 목사

입력 | 2019-03-11 03:00:00

故문익환 목사의 친동생… 전태일 분신 겪으며 민주투사로
DJ와 인연으로 한때 정치 발들여… 말년엔 ‘이민자 신학’ 연구에 매진




9일 소천한 문동환 목사가 생전인 2013년 8월 전북 김제시 난산교회에서 설교하던 모습. 뉴시스

개신교 목회자이자 진보적 실천가로 살아온 문동환 목사가 9일 오후 5시 50분경 소천(召天·별세)했다. 향년 98세. 고인은 1994년 소천한 문익환 목사의 동생이다. 영화인으로 잘 알려진 문성근 씨가 조카다.

고인은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 기자이자 목사였던 부친 문재린과 여성운동가였던 모친 김신묵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 등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8년 은진중학교를 마치고 은사인 김재준 목사의 권유로 일본에 유학해 도쿄신학교와 일본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고향 용정 만보산초등학교와 명신여중고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195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웨스턴신학대, 프린스턴신학교 등에서 공부했고 1961년부터 한신대 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 전태일 분신과 유신헌법 공포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5년 동료 해직 교수인 서남동 안병무 이문영 등과 갈릴리교회를 설립해 민중교회의 모태를 마련했다. 1976년 3월 1일에는 함석헌 윤보선 김대중 문익환 등과 함께 ‘3·1민주구국선언’에 서명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2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와이에이치(YH)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유신정권 몰락 시점에 출옥해 복직했지만 신군부가 들어서자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에 있을 때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풀려나 미국에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도움을 준 인연으로 1988년 평화민주당에 수석부총재로 참여했다.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나, 3당 합당에 반대해 정계에서 은퇴한 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2013년 귀국했다. 말년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구조적 원인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민중 신학을 더욱 심화시켜 ‘이민자 신학’ ‘떠돌이 신학’ 연구에 매진했다.

유족으로 부인 문혜림 씨와 아들 창근 태근 씨, 딸 영혜 영미 씨(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이며 장례예배는 12일 오전 9시 경기 오산시 한신대 채플실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02-2227-7500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