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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화장실서 난임주사… 서글퍼요”

입력 | 2019-03-04 03:00:00

난임 여성들, 배란 돕는 주사제… 4∼8주간 매일 맞아야 하지만
직장 근처에 전문병원 드물고 동네병원들은 시술 거부 일쑤
“보건소서 맞게 해달라” 요구 거세




4년째 난임 치료를 받고 있는 장모 씨(39·여)는 지난달 길을 걷다가 설움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난임 주사를 맞기 위해 회사 근처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세 곳에서 일제히 거절 당했기 때문이다. 장 씨는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담당 의사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초조했는데, 찾아간 병원마다 난색을 표하니 제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며 “결국 반차를 내 대학병원에 가 주사를 맞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스스로를 ‘주사 난민’이라고 부른다.

난임 여성들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에 앞서 4∼8주가량 배와 엉덩이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배에 놓는 주사는 배란을 돕는 과배란 유도제다. 이 주사는 그나마 투약이 쉽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은 혼자 화장실에서 주사를 놓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주사 투여법을 소개한 영상이 여럿 올라와 있다.

문제는 수정란의 착상을 돕는 포로게스테론 주사다. 이는 엉덩이에 놓는 근육주사여서 스스로 투여하기가 어렵다. ‘돌주사’로 불릴 만큼 엉덩이가 딱딱하게 굳어 고통이 심하고 잘못 놓으면 자칫 하반신 마비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난임 치료 병원이 가까우면 상관없지만 멀다면 난임 치료 병원에서 발급한 주사 의뢰서를 들고 주사액을 구입한 뒤 동네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난임 전문 병원 71곳 중 29곳은 강남구와 송파구 등 5개 구에 몰려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난임 환자들이 동네 병원을 찾지만 동네 병원에선 주사액 투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난임 여성의 몸은 아주 예민한 상태여서 다른 병원에서 처방한 주사를 시술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난임 환자인 강모 씨(34·여)는 “주사 의뢰서에 ‘부작용은 본 병원에서 책임진다’고 써 있어도 동네 병원에선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사비는 비급여여서 병원마다 가격이 적게는 몇 천원에서 많게는 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주사 난민’ 처지인 난임 여성들은 접근성이 좋아 직장 여성들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보건소에서 난임 주사를 놓아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보건소에서 난임 주사를 놓는 데 대한 찬반 의견을 묻자 한 달여 만에 5000여 명이 찬성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달 중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자치구 차원에서 난임 여성의 요구를 반영해 자구책을 마련한 경우도 있다. 서울 성동구보건소는 지난달 난임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지역 내 병원 12곳을 홈페이지에 공지해 지역 난임 여성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일선 의료기관에서 타 의료기관의 처방을 시행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난임 여성들의 불편이 큰 만큼 일선 보건소와의 업무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