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해치’에서 연잉군 이금(정일우)과 박문수(권율)는 사극 톤을 최대한 배제한 채 현대극 같은 ‘케미’를 뽐낸다. 박문수(오른쪽)가 이금의 과거 대리 시험을 적발하는 장면. SBS 제공
“어쭈∼.” “슬쩍 봤는데, 이번 생은 망했어.”
대술(과거 대리시험) 의혹을 제기하는 박문수(권율)에게 이금(정일우)이 뻔뻔하게 말한다. 지난달부터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해치’는 정일우에게 현대극 같은 사극이다. 그는 천민인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 연잉군 이금 역을 맡았다. ‘해를 품은 달’(2012년)부터 사극만 4번째 출연이지만 사극 하면 연상되는 톤에서 벗어났다. 젊은 영조를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에 힘도 뺐다. “현대극처럼 연기해 달라”는 제작진 요청에 영화 ‘사도’(2014년)에서 영조(송강호)와 사도세자(유아인)의 일상적인 대화를 참고했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을 벗어나 현대극 같은 사극이 많아졌다. 그만큼 익숙한 사극 톤보다 일상 톤의 비중이 늘었다. 기존 사극이 ‘하오체’ 위주라면 ‘해치’에서는 ‘해요체’가 주로 등장한다.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한 정통사극”이라는 제작진의 설명과는 별개로, 온라인에서는 ‘해치’가 퓨전 사극인지 정통 사극인지를 논하는 글이 많다. “한복 입고 상투만 튼 현대극”이라는 평이 대다수다.
넷플릭스 ‘킹덤’에서 배두나는 의녀 서비가 천민 출신이라고 해석해 의도적으로 어색한 사극 톤을 냈다. 그를 두고 “사극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극 연기에 대한 해석이 자유로워진 것은 젊은 왕을 내세운 현 사극 트렌드와 무관치 않다. ‘해치’에서 그린 젊은 영조 외에도 10% 안팎의 시청률을 올리며 화제가 되고 있는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여진구는 근엄한 왕과 우스꽝스러운 광대로 1인 2역을 소화했다. 7월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에서는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의 차은우가 도원대군 이림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tvN ‘백일의 낭군님’에서도 도경수가 왕세자 이율을 연기했다. 모두 엄격한 고증보다는 코미디 등 다른 장르와 융합된 퓨전 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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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난해 지상파에서 제작된 사극이 없을 정도로, 사극은 제작비에 비해 간접광고(PPL) 같은 투자를 받기 어려운 ‘가성비’가 낮은 장르였다”며 “최근 한국의 옛 모습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젊은 배우들을 통해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