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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KDI 원장이 내다본 韓경제 “경기둔화 저성장 지속, 그래도 삶의 질 추구해야”

입력 | 2019-02-21 11:10:00

● 소득주도 정책으로는 성장 어려워
● 경제 방향 옳지만 내세울 게 없다
● 재벌 개혁 실기한 듯
● 안전, 환경, 약자 보호 관련 규제는 강화해야
● 서비스산업 선진화하면 일자리 무궁무진
● 남북경협, 중국 특수보다 낫다




[홍중식 기자]

한국 경제의 앞날이 녹록지 않다. 불안한 고용지표, 제조업 경쟁력 하락, 저출산 고령화 가속, 수출 둔화….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수출물가지수가 크게 떨어졌다. 우리 수출품이 과거보다 제값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이웃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를 바짝 따라잡았다.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적 불확실성도 높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각국 정부에 ‘경제적 스톰(폭풍)’ 가능성에 대비할 것을 경고했다.
정부는 올해 우리 경제가 2.6~2.7%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MF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망치로 2.6%,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4%를 제시했다. KDI는 낮은 성장률 전망의 근거로 내수 경기 둔화와 완만한 수출 증가세 등을 거론했다. 2월 12일 KDI가 발표한 ‘2월 경제동향’에서는 4개월 연속 경기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1월 실업자는 19년 만에 최다인 122만4000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경기 둔화기

KDI가 2월 12일 발표한 ‘2월 경제동향’에는 4개월 연속 경기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순환한다고 보면 지금은 둔화기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언제쯤 회복기가 될까. 성장세를 이끌 모멘텀은 있기나 한 걸까. 저성장 기조가 유지된다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2월 8일 권위 있는 경제 싱크탱크인 KDI의 최정표(66) 원장에게서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들어봤다.

- 요즘 민생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많습니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생과 경제에 방점을 두었고, 포용적 성장을 강조하면서 희망을 역설했습니다. 하지만 야권에선 지금의 경제를 끝 모를 빙하기 같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민생 경제가 언제쯤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민생 경제는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를 의미하는데, 모두 다 어려운 게 아니라 서민층이 특히 어렵습니다. 경기는 사이클(순환)을 타는데, 지금은 둔화 국면에 있습니다. 이런 때에 일차적으로 고통을 받는 계층이 특히 서민층이기 때문에 민생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정부에서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으니, 회복 국면에 진입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성장률 집착하면 부작용


- KDI에서는 새해 성장률 전망을 2.6%로 내놓았는데요.

“우리가 과거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이어오다가 2, 3%대로 성장률이 떨어지니 저성장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는데요. 이제는 저성장 기조가 불가피하다는 점입니다.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해 노동력이 크게 약화된 데 있습니다.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의미하는 잠재성장률도 2.8%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는데요.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모두 1~2%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평균 정도는 됩니다. 우리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나라들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OECD에 편입된 나라들이죠.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 어떤 부작용이 나올 수 있나요.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물가 압력, 분배 왜곡 등의 문제가 커집니다. 그래서 적정한 성장률이면 족합니다. 일본은 30년 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부터 0~1% 성장률을 기록해왔습니다.”

- KDI가 전망한 2.6%라면 적정 성장률이라고 볼 수 있는지요.

“우리 상황에서 불가피한 성장률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저성장 기조로 갈 겁니다. 구조 개혁, 체질 개선, 삶의 질 향상 등에 역점을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 잠재력이 올라가 성장률이 좀 더 올라갈 수는 있을 겁니다.”

- 우리 경제에 저성장을 포함한 4저(저성장, 저투자, 저고용, 저분배)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요소들인지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 시대거든요.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성장하는 분야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제는 모든 게 얽혀 있기 때문에 서로 관련이 있는 거지요.”

- 4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경제 환경과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기가 둔화 국면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력 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인구 구조가 변하면서 여러 경제적 환경이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신속히 대응하면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가장 부족한 부분은 공정경제


- 경제 측면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며, 가장 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아직은 못한 것도 없고, 잘한 것도,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2년이 다가오는데 추진 정책에 따라 경제성과는 3,4년 이상 걸려야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제 정책은 방향이 옳으면 시간이 좀 걸려도 그 긍정적 효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 문재인 정부는 핵심 경제 정책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모두 삶의 질 개선과 직결되는 경제 방향입니다. 예컨대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 계층의 소득을 올려주겠다는 것이지요. 혁신은 평상시에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 것이고요. 현 정부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공정경제입니다. 갑의 횡포, 우월적 지위 남용을 개선해서 시장을 공정하게, 평평하게 해줘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시장은 불공정하게 기울어져 있거든요.”

- 현 정부의 경제 3대 축은 각기 성과와 한계가 있지만, 특히 소득주도성장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 왜 공격을 받느냐 따져보니 최저임금 인상과 등치돼 하나의 프레임에 묶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곧 소득주도성장은 아닙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정책의 큰 그릇이고, 거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수많은 정책이 담기는 것이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에 대해선 정부가 보완책을 꾸준히 써나가면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소득주도성장의 극히 일부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에 부작용이 있다고 큰 그릇을 깨뜨릴 필요는 없는 거지요. 공격받을 대상이 아닌데,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 소득주도성장이 공격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모든 정책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재검토돼야 하는 것 아닌지요.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인데, 왜 공격의 대상이 돼야 하나요. 2002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주5일 근무제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보다 더 엄청난 어젠다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저항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지요. 하지만 가야 할 방향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토요일에 일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즉 방향이 잘못된 것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옳은 방향이라면 가는 게 맞죠.”

OECD 평균보다 소비율 10% 낮아


- 소득주도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지요.

“저성장 기조가 굳어진 상황에서 ‘소득주도’를 통해 성장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장률을 3, 4%까지 높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정책 집행자들의 고민거리이지요.”

-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요.

“노동자에 대한 근로장려세제(EITC), 고용보조금 등 보완책이 나왔습니다. 실업자를 위해 새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통해 실업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도 대기업은 무풍지대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커지니 문제입니다.”

-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본 근로자는 구체적으로 몇 명이나 될까요.

“어림잡아 수백만 명이 될 거라고 보지만 명확히 집계하기는 어렵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은 당연히 혜택을 보는 것이고,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던 이들의 임금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치를 다 파악하기는 어렵지요. 좀 더 면밀히 분석해봐야 하겠지만 수백만 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보면서 소비가 늘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민간소비가 2.8% 증가해 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오랜만에 소비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2.7%)보다 높아졌습니다.”

소비증가율이 GDP증가율보다 높아진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여당에서는 그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반대 측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로 이뤄지는 GDP에서 지난해 민간투자가 -2.8%, 건설투자가 -4.0% 등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소비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이 작년 말까지의 통계를 기초로 1월 말 밝힌 수치다 보니 아직 그 원인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소비가 늘어났다는 것은 좋은 시그널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소비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OECD 국가 평균보다 10% 정도 소비가 낮습니다. 2017년 GDP 대비 소비율을 보면 미국 영국 등은 80%를 넘고, 한국은 60% 초반입니다.”

규제개혁과 혁신의 관계

-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정책에선 왜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지요.

“혁신은 가시적인 결과를 바로 볼 수 없고, 수치로 측정되기도 어렵다 보니 그 성공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마땅히 없습니다. 재벌들은 늘 규제개혁을 해야 혁신이 나온다며 규제와 혁신을 한데 묶인 프레임으로 보게 합니다. 규제개혁이 안 돼서 혁신이 안 됐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건 위험한 슬로건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규제는 많아지거든요. 안전, 환경, 약자 보호 등 삶의 질과 관계되는 영역에서 규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어요. 기업은 이것이 불편하니 항상 규제개혁을 원합니다. 물론 새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정부도 ‘샌드박스(새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규제 유예)’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규제는 혁신과 별도의 어젠다임을 알아야 합니다.”

- 규제와 혁신이 연결된 사안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혁신의 상징인 우버 택시의 경우 규제를 풀어야 국내 영업이 가능한데, 기존 택시업계와의 이해관계가 상충됩니다.

“규제와 이해관계 상충 사안에 대해선 묘안을 찾아야지요. 한쪽을 죽이고 한쪽을 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원격진료를 하면 동네 병원이 다 죽는다는 주장도 있지요. 그럴 경우 공존과 상생의 원리에서 접근해 규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 공정경제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재벌 개혁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는데요. 집권 2년을 앞둔 시점에서 재벌 개혁은 어느 수준까지 이뤄졌는지요.

“재벌 개혁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재벌정책이라고 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재벌 개혁은 정권 초기에 했어야 했습니다.”

재벌 세습 경영의 문제점

- 재벌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의지가 부족했고,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의 입법 저항, 재벌의 저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재벌 개혁이란 말을 끄집어낼 수도 없습니다. 정부가 오히려 재벌에 사정하는 형편이 됐으니까요.

재벌 개혁은 국민의 피부에 바로 와닿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당장 눈앞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오랜 시간을 거쳐 경제가 조금씩 정상화되는 것이니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장 재벌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은 완강하니,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 원장님은 경제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지적해오셨는데요. 선진국 경제구조를 보면 애플이나 샤오미, 월마트 같은 거대 기업에 권력이 집중돼 있기도 합니다.

“애플 등은 재벌이 아니잖아요. 기업은 커질 수 있는 겁니다. 그들 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한 국내 재벌과는 다르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5대, 10대 재벌이 국가 경제의 70~8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전문경영인의 기업이 커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요.

물론 기업이 커지면 시장을 독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것을 반독점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만 힘이 있으면 반독점 정책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재벌은 특유의 경제 지배력으로 온갖 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어요. 게다가 세습체제도 문제입니다. 선진국 대기업은 모두 전문경영인 체제입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세습 경영체제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재벌 총수들이 대부분 감옥에 갔던 것은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게 이유 아닙니까.”

- 우리나라 현실에서 과연 세습 경영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요.

“미국에서처럼 경영 투명성이 제고되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상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대표소송제,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임제 등이 다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이상으로 투명한 경영체제가 도입되면 세습경영인이 사익을 챙길 기회가 차단되기 때문에 굳이 경영 일선에 나설 필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나라도 경영 투명성이 강화되면 세월이 가면서 세습이 중단되고 전문경영인이 자리 잡아 능력 위주로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갈 겁니다. 이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입법을 통해 더 투명한 경영이 이뤄져야 합니다.”

양극화 해소하려면…

최정표 원장은 2018년 8월 13일 KDI국제정책대학원 주최 ‘공공관리자 국제정책 세미나’에서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KDI]


- 세습 경영이 보수적인 경영, 혹은 저투자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요. 지난해 민간투자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는데요.

“세습 경영인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돈도 있고, 인재도 있지만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경제의 역동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할아버지들, 창업 1세대는 투자를 해야 살아남았습니다.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조중훈 같은 창업자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쟁터에 가서도 돈을 벌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투자를 너무 많이 해서 중복 과잉투자를 낳았고, 그것을 해소한다고 산업합리화 정책, 구조조정 등이 강제로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돈을 빌려 부채경영까지 했으니까요.”

- 해외의 재벌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요.

“미국 유럽 일본에도 재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3세대에게 세습될 때 전문경영인 체제로 갔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법이 엄격해졌고, 세습 상속자들이 분할돼 지분 확보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영권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수한 전문경영인들이 경영을 잘해서 주가를 올리고 배당을 주면 자신의 자산이 불어나니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경영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재벌 상속자들은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기고, 자신들은 자선사업이나 문화사업에 나섰지요. 일본도 전후 재벌이 해체되면서 전문경영인들이 1950, 60년대 고도성장기를 이끌면서 경제대국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런 징후가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우수한 인재들이 해마다 수천 명씩 사회로 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습 총수의 하수인이 돼 위탁된 범위 내에서만 역량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우수해도 자기 주관을 갖고 세계를 상대로 경영 능력을 펼 수 없는 나라입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양극화가 오히려 심화됐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분배 개선, 복지, 공정성이라는 기본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분배구조가 제일 좋지 않은 나라인데, 분배 개선을 위한 정책도 제일 약합니다. 1,2분위 하위계층의 소득이 너무 낮습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합니다. 복지와 공정경제를 위해선 돈이 들어갑니다. 이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느냐가 문제인데요. 국민의 조세부담률을 올리는 등 강력한 처방이 뒤따라야 합니다.”

일자리 보고(寶庫) 7대 서비스산업

-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3년차 최대 고민이 일자리라고 했고, 고용 지표가 가장 아프다고 했습니다. 고용난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용난을 해결할 해법은 무엇인지요.

“자동차나 조선업 등 전통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고도화로 실업자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세 자영업자 중에도 실업자가 되는 이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구조조정을 지연시켜선 안 됩니다. 우선적으로 확장 재정 정책을 통해 구제수단을 만들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실업자를 받아줄 새 산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은 서비스업입니다. 우리 서비스업은 선진국에 비해 낙후되고, 산업의 비중도 낮습니다. 서비스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선진화해야 합니다. 이 분야는 노동집약적이면서 내수산업입니다. 거기서 양질의 일자리가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KDI는 문화·예술, 관광·레저, 영·유아 보육, 간병·요양, 평생교육, 환경, 보건·의료 산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오는 4월 대규모 심포지엄을 열고 정책 제안을 할 겁니다. 이 분야의 산업을 선진화하면 고용을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펴면서 2, 3년 가면 상당히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7대 서비스산업 연구는 최정표 원장이 취임 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KDI의 여러 연구원이 서비스산업 연구를 위해 선진국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 결과를 4월에 1차 보고서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산업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 육성책이나 IT산업 육성책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 연구가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우리 사회가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삶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은 듯합니다.


“삶의 질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의 조건은 안전하고 공평하며 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삶의 질도 높아진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 방향으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 방향의 정책을 쓰는 과정에서 규제를 받아야 하는 쪽의 저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컨대 근로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불가피한 요소이지만 우리가 당장 그런 사회가 되면 불편해할 사람들이 생기는 거지요. 하지만 그것은 넘어서야 할 과제입니다.”

북한 경제 30년 연구 축적

-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가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데요. 남북경협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KDI는 30년 가까이 북한 경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제가 취임한 뒤 북한경제실을 북방경제실로 개편하고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향후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가 풀리면 남북경협이 급물살을 탈 것이고, 남북이 윈윈(win-win) 구조로 가려면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김동연 당시 부총리를 만나서 종합정리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기획재정부의 의뢰로 현재 KDI가 남북경협과 관련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북한에 대한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남북경협이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남북경협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엔 10년 주기로 베트남 특수, 중동 특수, 중국 특수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이 북한 특수가 될 겁니다. 우리는 자본이 풍부하고, 북한은 자원이 풍부합니다. 그것이 조화를 이루면 새로운 경제특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언어 장벽이 없는 북한이 중국보다 더 나은 특수를 일으킬 대상이 될 겁니다. 기업가 정신을 갖고 북한을 개척할 경우 매우 희망적일 수 있는 거지요.”

KDI는 경제·사회 전반의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합리적 정책 수립과 제도 개혁에 기여해온 싱크탱크다. 정부출연기관이긴 하지만 객관적 연구로 권위가 높다. 올해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가 발표한 ‘2018 글로벌 싱크탱크 순위’에서 KDI는 전 세계 20위, 미국을 제외한 경우 글로벌 5위, 6년 연속 아시아 1위를 기록했다. 2021년 KDI는 50주년을 맞이한다.

경제개발에서 삶의 질 연구로

- 50주년을 맞이해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요. 

“지난해 KDI 50주년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KDI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1년 가까이 직접 운영하다 보니 그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 엄청난 지적 재산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입니다. 그에 맞게 KDI의 연구 기능이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동안 경제 개발과 성장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는 싱크탱크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국 모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사회가 북구형 복지 선진국으로 갈지, 미국처럼 시장형 선진국으로 갈지, 아니면 한국 고유의 모델을 만들지 정해야 합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비전입니다. 50주년 위원회의 태스크포스에서 그것을 연구 중입니다. 50주년 이전에 미래 비전 보고서를 펴낼 계획입니다.” 

- 지난해 6월 KDI가 브리핑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다 8만4000명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며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보고서를 내놓은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라 관심을 끌었는데요. 평소 소속 연구원들에게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 연구를 강조하는지요. 

“KDI 연구자들은 경제 분야의 국내 최고 인재들이니까 그들의 연구를 존중해야 합니다. 특별히 소신 연구를 주문할 필요도 없지요. 더욱이 당시 연구 결과에는 저도 공감했습니다. 그해 16% 최저임금 인상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그대로 가면 쇼크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예상대로 일자리가 감소했습니다. 소신을 떠나서 그 정도 얘기는 해야 ‘KDI’라고 할 수 있겠지요.”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現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겸 국제정책대학원 총장
●저서: ‘경영자 혁명’ ‘한국재벌사 연구’ ‘미시경제론’ 등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